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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가져다 쓸 게 없을 정도로 ‘국민’이 흔하던 그 어름.
그 유행에 편승해 평창군이 잽싸게 이름을 선점한 ‘국민의숲’입니다.
대서(大暑) 날이라 역시나 무더운 날,
꽝꽝 얼린 물에다가 등에 붙이는 쿨링팩, 그리고 합죽선.
또 숲속 모기가 있을지도 몰라 기피제까지
거의 완벽하게(?) ‘큰더위’를 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대관령 고갯마루에 오르자 썰렁한 냉기가 끼칩니다.
숲으로 들어갈 때쯤엔 짙은 안개가 뒤덮어 덥기는커녕 춥지 않을지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안개 안개 안개...
숲은 온통 안개에 묻혀 있습니다.
전나무 곧은 둥치에도, 넙데데한 떡갈나무 이파리에도, 내 발소리에 놀라 냅다 달아나는 다람쥐의 곧추세운 꼬랑지에도 온통 안개였습니다.
잘 아는 박미라 시인의 <안개 부족>이 생각나는 풍경입니다.
이곳은 안개마을이고 이 수목들은 안개부족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안개는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내내 그러고 있었습니다.
당초에는 좀 덥더라도 밝은 햇살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런 풍경을 기대하고 간 거였는데 숲은 안개에 젖어 어둡고 습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도 실망스럽진 않은 게 판타지 동화 같은 이런 풍경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속에 들어와 있는 거라고 혼자 체면을 겁니다. 그럴듯 합니다.
이곳은 주황색인 동자꽃과 하늘말나리, 분홍색인 노루오줌과 꼬리조팝나무가 지천입니다.
평소엔 자주 보지 못하는 꽃들이라 맨 처음 만나자 반가웠는데 내내 보이는 게 그거니 나중엔 시틋해졌습니다.
저녁답에 대관령 찻길이 짙은 안개에 덮여 한여름이지만 일찍 어둠이 내립니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안개는 내내 그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르지요.
코렐리 : 바이올린 협주곡 리코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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