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제주동백수목원

설리숲 2023. 1. 9. 19:14

 

작년 2월 말에 제주동백수목원을 갔더니 꽃이 다 졌다고 이미 폐원한 상태였다.

과연 제주는 뭍보다 계절이 빠르구나.

올해는 좀 일찍 서둘러 년초에 갔더니 아주 절정이었다.

 

 

 

 

 

 

 

 

보통 우리가 아는 동백은 이렇다.

다른 꽃과 달리 송이로 떨어지는 독특한 완성.

핏빛보다 더 진한 붉음.

 

 

그런데 제주의 동백은 전혀 다르다.

꼿송이도 그렇고 색깔도 다르다.

나뭇잎도 다르다. 애기동백이라 한다.

정염의 빨간색이 아닌 분홍색이다.

동백 특유의 비장한 슬픔이 없다.

대신 천진난만한 소박미인가.

송이째 떨어져 뒹구는 애슬픔 대신 낱낱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의 청초함?

 

 

 

 

 

 

 

 

 

게다가 이곳 수목원은 나무를 죄다 저리 인공으로 둥그렇게 깎아 놓아 맨송맨송하니 영 멋대가리 없다.

 

털이 죄다 깎인 애완견을 볼 때가 많다. 주인은 애정이라 착각하지만 실은 개 학대다.

나무도 그렇다. 조경이란 미명하에 무자비하게 깎아 버리는 학대.

인간 위주로 자행하는 행태들이 싫다.

 

 

 

 

 

 

 

 

기온은 푸근한데 새벽부터 세찬 바람이 정원을 휘저어 내내 으씰으씰 쌀쌀한 아침나절이었다. 그 바람에 꽃잎들은 더욱 날려 두텁게 쌓이고 있었다.

 

붉은 동백이든 분홍 동백이든 나는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한 시절을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떠나는 강렬한 그 생을 어찌 경탄하지 않을까.

짧아서 더욱 아름다운 삶이여.

 

 

 

 

 

 

 

수목원 건너편 동박낭에도 동백이 절정이었다.

동박낭은 조그맣고 허술한 카페와 그 정원이다.

오히려 이곳이 더 자연스럽고 정갈한 매력이 있다.

이곳은 작년에도 들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다.

이번엔 동백의 절정이라 그대보다 더욱 고혹적인 풍경이다.

 

 

 

 

 

 

 

 

 

 

 

 

 

 

제주는 지금 동백의 세계다.

뭍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분홍빛 애기동백.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동백도 좋고 설국도 좋고.

우선은 문밖을 나설 일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문밖에 있음을.

 

 

 

 

 

           레베카 루커 :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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