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그곳은 설국이었다... 내소사

설리숲 2022. 12. 20. 23:46

딱히 갈곳이 마땅치 않던 주말이라 역시나 만만한 비내섬이나 갈까 하다가.

호남 지방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눈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떠난 길이었다.

 

과연 군산 쯤 다다르니 하늘은 어둡고 저 멀리 대기가 뽀얗다. 정말 눈이 많이 오는 듯 싶었다.

서서히 차량 속도가 떨어지면서 거의 정체 수준으로 길이 막혔다.

안날에도 대설에다가 또 눈이 내린다. 눈에 잘 뵈지도 않는 가루눈이다.

날은 또 강력 한파라 길이 미끄러우니 차들이 엉금엉금이다. 도로가 위험할 땐 이렇게 지정체 상태로 가는 게 안전하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지루하게 부안에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눈세계다.

교통상황은 최악이지만 그것만 양보하고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사뭇 눈이 날린다.

이미 어스름 저녁이 다 되었다.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밤새 눈은 계속 내렸나 보다.

여전히 잔설이 날리고 길 상태는 황망하다. 매섭게 추운 아침이었다.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소사를 들어갔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풍경을 만났다.

설국이었다.

 

 

 

 

 

 

좀 부지런을 떨어 일찍 도착하니 고즈넉한 설경이 참말 근사하다.

이 내소사 전나무길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푸른 전나무에 하얀 눈이 가세했으니 장관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마침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그럴듯하게 성탄 분위기도 난다.

 

 

 

 

 

 

 

 

 

 

 

 

 

벚꽃이 만발한 것 같다.

사천왕문 앞의 이 길은  봄철에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봄과 겨울 풍경이 같다.

 

 

 

 

 

 

 

도대체 나를 어디서 찾는다고 자꾸 떠난다고들 하는지?

나는 그냥 나일뿐 그 어디에도 없는 걸.

 

 

 

 

염불하러 법당으로 들어가려던 스님이 만들어 놓는 걸 멀리서 봤다.

스님도 사람이었다. 나 같이 천진한.

 

 

매번 갈 때마다 반드시 찍는 대웅전 꽃무늬 문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 조각했을지 고개가 숙여지는.

 

 

 

 

눈 덮인 산사.

이 곳에 갇혀 사바와 단절된 생활을 했으면 딱 좋겠구만.

눈이여 더 펑펑 내리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그러나 눈은 진즉 그쳤고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이 퍼지고 시간도 지나니 관광객들이 들기 시작했다.

 

날이 덥든 춥든 눈비가 오든 미세먼지가 가득하든 유명 관광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니 오늘 같은 날은 더 많이 들어온다. 폭설과 한파를 뚫고.

 

 

 

 

 

 

 

 

 

무시로 나무 우듬지에서 눈가루가 쏟아진다.

그때마다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장관이다.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화려한 눈꽃축제다.

오롯이 자연이 보여주는 환상의 공연.

 

 

 

 

 

 

 

 

일주문 밖 이디야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밖은 추운데 안은 따뜻하다. 별것 아닌 게 행복하다.

 

창밖 풍경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도 되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된다.

 

외국 소설을 들먹일 게 아니라 내가 소설을 써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내 사라졌지만 오랜만의 뭉클한 감정이었다.

 

 

 

 

 

 

           강수지 : 혼자만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