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깡깡이마을 양다방

설리숲 2020. 12. 20. 23:45

 

영도다리를 건너면 일명 ‘깡깡이마을’이다.

조선업의 활황으로 이 일대는 그에 관련된 기계제작과 수리, 철공소의 밀집지대다.

선박의 철판을 긁어내는 도구가 깡깡이다. 밤낮으로 철재를 다루는 소리가 깡깡거린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붙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유곽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조선 공장들이 있고 사내들이 있으니 유곽도 자연스레 생겨났을 것이다.

 

 

 

 

 

 

근래 깡깡이예술마을로 ‘예술’이란 단어를 첨가했지만 그닥 예술적이진 않아 보인다. 그저 단단하고 삭막한 철공소 골목이다. 뭐 깡깡거리고 만들어낸 작품이 예술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아는 사람이 부산에 가면 이곳을 한번 들러보라고 하여 우정 발길을 돌렸다. 마을보다는 그 분이 추천한 양다방을 가기 위해서였다.

 

주인 마담이 양 씨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1968년 처음 문을 연 이래 42년 된 오래된 다방이고 지금의 여주인은 15년 되었다고 한다. (이 분의 이름은 이미애 씨다. 방송이나 지면기사에 여러번 소개가 되었고 이름도 공개되었기에)

 

 

 

마담은 다방이 유명세를 타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 걸 자긍하고 있다.

이런 촌구석에 누가 관광을 오겠냐고. 대부분 우리 다방 구경하러 오는 거라고.

나더라도 맘놓고 사진 찍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사진 찍을려고 오는 거라고 한다.

좁고 어둡고, 세련미라고는 일도 없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앞으로도 절대 리모델링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다방 벽면은 그간 방송에 출연했던 캡쳐사진들로 꽉 차 있다.

 

메뉴는 아메리카노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써 붙여 놓았는데 거개가 쌍화차를 마신다. 이 다방을 상징하는 대표 상품이다.

나도 쌍화차.

그러고 보니 입때껏 살면서 한 번도 쌍화차를 먹어 보지 않았다. 부산 양다방에서 그 첫경험을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여행에서 얻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이런 류의 첫경험이다.

여행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가르쳐 준다.

 

 

저 팻말에 중앙이란 글씨를 덧붙여 쓰고 싶은 충동이 잠깐.

그러면 완벽한 케미인데.

 

 

건너편엔 자갈치시장과 멀리 용두산 부산타워.

그리고 자갈치 너머 걸어가면 국제시장이다. 이 남포동과 부산역 일대가 부산의 상징이요, 볼거리다. 젊은이들의 상권은 물론 서면이지만.

 

 

낡고 오래된 이방의 풍물 속을 걸으며 옛것과 새것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 이 눈부신 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손으로 때려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분진 때문에 이 추운 날에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작업을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

코로나로 직접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게 트렌드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직업 중에 비대면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고급진(?) 일은 얼마나 될까.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는 오늘도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노동현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쌍화차의 단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아 왠지 개운치 못해 나들가게 앞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골목길을 휩쓸고 지나는 냉랭한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쌍화차와 아메리카노 사이의 딜레마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재클린 프랑소아 : Padam Padam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라섬  (0) 2020.12.28
교동도 대룡시장을 아시나요?  (0) 2020.12.23
황사영백서  (0) 2020.12.10
직지사에서  (0) 2020.12.03
박하사탕  (0) 2020.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