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212

찔레꽃 향기가 슬픈가?

산청 차황면의 한 실개천 둑엔 하얀 찔레가 길게 조성돼 있습니다. 지금 한창 절정으로 피었습니다. 벚나무나 이팝나무, 또는 플라타너스나 은행나무, 또 메타세쿼이아 편백나무 진달래 개나리, 하다못해 핑크뮬리 등 비주얼 좋은 초목이 아닌 찔레라니. 아마 찔레를 지역 콘텐츠로 삼은 건 지구상에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디라 할 것 없이 찔레꽃 천지요 그 향기 진동합니다. 그리 예쁘다고도 할 수 없는 꽃송이에다 그럼에도 표독스럽게 억센 가시를 달고 있는 아이러니한 식물. 어릴 적 아이들이 어린 순을 잘라 먹는 것 외에는 그리 쓰임새도 별로 없는 찔레.(다원에서는 가끔 그 어린 잎을 따서 차를 덖기도 하지만) 관심받지 못하는 이 꽃이 장사익의 노래로 불리면서 그럴 이유도 없는데 슬프고 애..

거센 바람 거친 파도 가파도

섬과 바다는 광풍이었다. 가파리(가오리)를 닮아 가파도라 했다던가 파도가 많아 가파도라 했는가. 운진항에서부터 섬까지의 짧은 뱃길은 높은 파도로 일렁거렸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은 늘 이리도 바람 세고 파도가 높다고 했다. 그러니 이 섬의 이름은 파도가 거센 加波島, 또는 加波濤라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상동포구에 도착했지만 거센 파도에 여차하면 전복될 듯이 배는 위태해 보였다. 선장은 여기 바다는 늘 이렇다는 방송으로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가까스로 접안을 하고도 선체는 널뛰듯 오르내렸다. 위태롭게 선착장에 오르고 나서야 승객들은 십년감수 마음이 놓였다. 가파도는 넘실대는 보릿물결이 장관이라는데 수확이 끝난 들판은 텅 비었다. 허허롭다. 첫 추위를 코앞에 둔 늦가을 들녘 같다. 빈..

삼천포 아가씨

이틀간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 봄도 거의 막바지다. 다원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고 진종일 잠에 빠져 있거나 술 좋아하는 여자들 등살에 불콰하게 취해 있거나 할 것이다. 잔뜩 흐려 검은 구름이 무겁게 잠긴 진양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사천읍을 지날 때쯤 예보대로 비가 쏟아진다. 삼천포는 비가 와야 제격이다. 일종의 선입감이다. 그 옛날 은방울자매가 부른 노래의 가사가 비 내리는 삼천포로 시작한다. 대중가요의 위대함은 그것으로 인해 어떤 특정한 장소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설이 있듯 삼천포는 특별히 가 볼 일이 없는 지방이었다. 부산 마산 등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왕래하거나 같은 경상도 지방을 가면 갔지 생뚱맞게 바닷가에 되똑 나앉은 삼천포를 갈 일은 없는 것이다. 삼천포..

송지호연가

80년대 초반 미애라는 여가수가 있었다. 크게 뜨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는 라디오와 TV에 자주 출연하는 등 짧은 기간이나마 제법 인지도가 있었다. 가창력이 있어 좀 빛을 볼 줄 알았더니 슬그머니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부른 로 인해 강원도 고성에 그런 호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시 송지호를 가다.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서 바라보는 풍취는 그저 그렇다. 건물이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너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그냥 호수 둘레를 걷는 것이 좋다. 송지호는 석호다. 모래가 쌓여 가두어진 호수다. 두 눈이 파래지도록 여름의 진초록이 아름다운 호수다. 관광객이 떼 지어 몰려들 만큼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청정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호수 주변엔 드넓은 습지가 둘러싸고 있다. 보통은 송지호만 둘러보..

이방초등학교와 산토끼

창녕군은 근래 이방면의 이방초등학교가 노래 의 탄생지라고 대대적으로 문화선양사업을 하고 있다. 동요 는 마산 출신의 이일래가 이방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만든 노래라 한다. 그간 작자 미상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가 1938년 출판된 영인본이 1975년에 나오면서 이일래의 노래로 비로소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미심쩍은 건 이 노래는 오랜 세월을 남과 북 모든 사람들이 불어오던 노랜데 정작 작곡자인 이일래는 왜 익명으로 숨어 있었을까 하는 것. 내막이 궁금한 건 아니고 새로 밝혀졌다는 위 사실이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방초등학교 옆 동산에는 산토끼노래동산이라는 테마공원이 있다. 봄꽃들이 한창이던 지난 봄에 이곳을 다녀왔다. 전에 갔었던 서울의 둘리뮤지엄도 그랬고 이 산토끼노래동산도 역시 하나도 재미가 없..

소녀와 가로등

춘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같은 관내에 있는 남이섬을 한번도 가 보질 않았다. 춘천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이섬이 유명해졌다. 드라마 가 일본에서 크게 흥행하면서 춘천에 일본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중앙시장과 명동거리에는 일본 글씨들이 난무하고 일본 노래들도 간간이 들렸다. 남이섬은 인산인해, 유명세에 휩쓸려 덩달아 한국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남이섬 선착장 소재지인 가평군도 어부지리로 관광수익을 올렸다. 이것이 한류의 시작이었다. 우리의 욘사마와 지우히메가 정말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다. 나 그로부터 어언 20여년 후에 처음 이 섬에 들어오다. 흰눈이 있는 풍경은 서정을 만끽하기에 좋았다. 제목은 소녀와 가로등이라고 적어 놓고 생뚱맞은 남이섬이라니!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이화동 골목

탐방객의 눈은 낯설고 이국적인 풍취를 즐기려고만 하지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척박한 불편한 생활은 전혀 생각해 보려 않는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국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낙산공원 언덕 그리고 골목길. 주민들의 불편을 도외시하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명소이긴 하다. 대학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언덕을 오르다 보면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그 어름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몽마르트를 가 보진 않았지만 과연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욕구와 영감을 줄만도 하겠구나. 나도 목에 건 카메라가 있으니 이것저것 찍는다. 내로남불 나 역시 주민들의 눈엣가시 중 하나다. 시인은 시상을 떠올리겠고 음악가는 악상을 떠올리기도 하겠다. 이미 미술가들은 한바..

꽃잎 날리던 벼랑에 서서, 낙화암

거기 노총각들 내 얘기 듣고 고대로 함 해봐. 올해 안에 장가가게 될꺼야. 거왜 충청도 가면 낙화암이라는 데 있잖아. 예전에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 하는데 요즘도 거기 여자들이 떨어지러 많이 온다더군. 그니까 그 밑에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지는 여자를 받아서 살려내는 거지. 그 여자랑 사는 거야. 누가 몸으로 받아 내라는가? 같이 죽을라고? 왜 소방구조대원들이 불이 나면 밑에다 쿠션이나 뭐 그딴거 설치하잖아. 매트리스 몇 개 깔아놓고 기다리면 돼. 아 장가갈라믄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 텐트를 쳐 놓고 당분간 기거하면서 지내는 거지. 그런 노력과 인내심도 없이 거저 여자를 얻을라구? 기껏 받아낸 여자가 늙수그레한 할머니라도 어쩌겠어. 이게 내 팔자구나 하며 델꼬 살아야지. 어차피 우리..

석모도 보문사

참 멀고 먼 노정이다. 내비로는 3시간 40분 걸린다 해서 제법 많이 걸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먼 길이었다. 아침 8시에 집에서 떠났는데 보문사에 도착한 게 오후 1시 30분이다. 도중에 지체한 건 아침 먹느라 휴게소에 들르고 자판기커피 한 잔 먹느라 또 한번, 도합 두 번 휴게소에 들렀다. 서울 시내에 들어서 올림픽대로에서 강화 섬으로 넘어갈 때까지의 거리도 거리려니와 차도 많고, 웬 신호는 그리 많은지 움직이는 시간보다 신호대기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졌다. 하도 짜증이 나서 그냥 돌아가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까지 왔으니 집으로 돌아간대도 또 이만큼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냥 차에서 하루를 허비한다는 게 속상했다. 귀한 주말 이틀 중의 하루를 그냥 날려버리게 되니.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