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이다.
정지용
나는, 아니 우리는 학교에서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그 이름을 들어보질 못했다.
서정주 노천명 모윤숙 최남선 박목월 김동환 등 학교에서는 줄창 친일의 오욕을 지닌 사람들만 가르쳤다. 그들이 쓴 시와 소설을 공부하고 대입시험을 치렀다. 정권과 위정자들이 친일 그 자체였으니 여전히 완전한 독립 조국을 가지지 못한 채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사망에 대한 정확한 사안은 아직도 미상이다. 친일 친미정권은 6.25때 북으로 넘어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만으로 정지용을 월북인사로 낙인찍고는 영원히 묻어두려 하였다.
내가 정지용이란 위대한 시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이동원이 부른 노래 <향수> 때문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인가.
나는 그를 잘 알지 못 하지만 자연과 고향을 노래한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대하며 새삼 감동한다. 아, 우리에게 이처럼 찬란한 보석이 있었구나. 그 보석을 차가운 땅 속에 묻어둔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들인가.
고향 옥천에 조촐한 그의 생가가 있다.
생가라기보단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예전엔 조촐한 맛이 잇더니 이젠 이것저것 많이도 설치해 놓고 해서 ㅇ어수선하니 고종한 맛이 없다.
구읍에서 대청호 장계까지 지용을 기리는 테마 길이 있다. 언제 유유자적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밤뒤를 보며 쪼그리고 앉았으랴면, 앞집 감나무 위에 까치 둥어리가 무섭고, 제 그림자가 움직여도 무서웠다. 퍽 치운 밤이었다. 할머니만 자꾸 부르고,할머니가 자꾸 대답하시어야 하였고,할머니가 단 데를 보시지나 아니하시나, 하고 걱정이었다.
아이들 밤뒤 보는 데는 닭 보고 묵은 세배를 하면 낫는다고, 닭 보고 절을 하라고 하시었다. 그렇게 괴로운 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워, 참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둥어리 안에 닭도 절을 받고, 꼬르르 꼬르르 소리를 하였다.
- <별똥이 떨어진 곳> 중에서 -
어떤 날, 유정이 문자를 보내 내가 정지용을 닮았다고 한다. 난 그럴 리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만,
정지용의 휘문고보 시절의 사진을 보면 내 맏형이랑 꼭 닮았다.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와 형과 나를 판박이 같다 늘 하였으니 친구 말대로 정지용과 내가 닮았음이 과히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정지용 그에게 더욱 정감이 간다.
그곳에서 오백여 미터 지근거리에 고 육영수의 생가가 있다. 반공과 유신의 가장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여사다. 그리고 그들의 딸이 다시 권력을 잡고 반공국가로 회귀했다. 권력은 무상하다더니 그 말은 그른 것 같다.
육영수 생가는 호화찬란하게 복원해 놓았다. 왕정국가 조선의 명성황후의 생가보다도 육 여사의 생가는 엄청나게 규모가 크고 으리으리하다.
정지용과 육영수의 생가가 나란히 자라잡고 있다. 마음이 어지럽다.
마음은 어지럽지만 한번쯤은 둘러볼만 하다. 건축미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정지용 시 김희갑 작곡 이동원 박인수 노래 :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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