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명동별곡 (明洞別曲)

설리숲 2024. 12. 20. 21:52

 

내가 자란 춘천에도 명동거리가 있다.

당연 춘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여서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화려한 최고 거리였다.

그런데 가끔 서울서 온 듯한 아가씨들이 지나치면서 어이없어하는 웃음소리를 듣곤 했다.

 

- 여기가 명동이야? 뭐 이래 꾸졌어!

 

그게 자존심 상하고 지방을 비하하는 것처럼 들려 불쾌했었다.

 

나중에 서울의 진짜 명동을 가 보고서는 그녀들의 반응을 이해하게 되었다.

 

 

 

 

明洞의 이름은.

조선시대 明禮坊(명례방)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당시 명례방에는 종고개(鐘峴) 진고개(泥峴) 구리개(銅峴) 등의 고개가 있었다.

니현은 땅이 질어서 진고개, 동현은 흙이 구릿빛이어서 구리개였고 약방이 즐비했다고 한다.

종현은 임진왜란 때 명 군대가 주둔하며 숭례문에 있던 종을 걸어둔 데서 유래했고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다.

 

 

 

 

 

 

화신백화점을 원조로 현재는 롯데와 신세계가 주도하는 쇼핑경제의 중심지이고

골목상권은 화장품가게가 주도했다. 1990년대 한중수교에 이어 중국의 해외여행자유화 국가로 한국이 지정되면서 많은 유커들이 명동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코로나 시국으로 한때 공동현상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전의 상태로 완전 복귀했다.

 

중국관광객들의 성지라고 하는 올리브영과 명동교자가 있고 쇼핑의 성지 롯데 신세계가 있다.

작년의 통계에는 크리스마스에 가장 사람이 많이 방문한 곳 1위가 명동이라 한다.

 

 

 

나는 한번도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명동에 대한 편린 하나 없다.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로서 간접으로 접하는 것으로 그것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도시가 가진 매력을 가장 잘 집약시켜 놓은 곳이 명동거리라는 생각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거기다 낭만까지.

 

아마 대중가요도 명동에 대한 노래가 가장 많을 것이다.

나 같이 동경만 하는 촌사람뿐 아니라 서울사람들도 그만큼 명동에 환한 추억과 애환이 많아서일 것이다.

 

 

 

 

원래는 주택가였던 이곳은 명실상부 한국의 금융 패션 쇼핑 서비스업 대중문화의 중심이고  대한민국과 서울의 상징이자 한국관광 1번지다.

명동예술극장이 생기면서 예술문화인들의 아지트가 되면서부터다.

명동예술극장은 1937년 명치좌란 이름으로 설립된 후 해방 후 시립인 시공관으로 개칭했다가 1957년 지금의 국립명동예술극장이 되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충무로 영화인들, 문인들이 드나드는 다방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명동백작이니 댄디보이의 시대를 풍미하면서 지금의 명동이 되었다.

다방문화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가톨릭의 성지이고 또한 우리 모두의 성지이기도 한 명동대성당이 있다.

명동대성당은 한국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상대로 나약한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길 잃은 어린 양 되어 찾아 들어오면 따뜻하게 안아주던 대성당이다.

 

 

 

 

 

어둠이 내리면 더욱 빛나는 명동의 별곡.

 

 

 

 

나는 단 음식을 싫어하지만 어쩌다 한번 들르게 되면 이 달디단 비엔나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마시는 게 아니라 떠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맛으로 먹기보다는 추억감성팔이를 즐기는 것이다.

 

박인환 시인 등 양복 빼입고 폼 내고 활보했던 옛 시절의 댄디보이, 그리고 함께 했던 슈샨보이들을 떠올리며 그 시절로 거슬러 가 보는 것도 유치한 재미 중의 하나다.

 

 

 

 

 

 

 

 

 

 

                육각수 : 명동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