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찔레꽃 향기가 슬픈가?

설리숲 2023. 5. 25. 23:14

 

산청 차황면의 한 실개천 둑엔 하얀 찔레가 길게 조성돼 있습니다.

지금 한창 절정으로 피었습니다.

 

벚나무나 이팝나무, 또는 플라타너스나 은행나무,

또 메타세쿼이아 편백나무 진달래 개나리, 하다못해 핑크뮬리 등 비주얼 좋은 초목이 아닌 찔레라니.

아마 찔레를 지역 콘텐츠로 삼은 건 지구상에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디라 할 것 없이 찔레꽃 천지요 그 향기 진동합니다.

그리 예쁘다고도 할 수 없는 꽃송이에다 그럼에도 표독스럽게 억센 가시를 달고 있는 아이러니한 식물.

어릴 적 아이들이 어린 순을 잘라 먹는 것 외에는 그리 쓰임새도 별로 없는 찔레.(다원에서는 가끔 그 어린 잎을 따서 차를 덖기도 하지만)

 

 

 

관심받지 못하는 이 꽃이 장사익의 노래로 불리면서 그럴 이유도 없는데 슬프고 애련한 사연을 지닌 듯한 꽃으로 재개화되었습니다.

 

 

산청의 산골마을 실매리에서는 매년 장사익의 찔레꽃 공연이 열립니다.

산청 출신도 아닌 장사익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어느 해 산청의 한 행사에 초대되어 노래를 한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실매리에 그의 노래비가 세워졌고 매해 봄 그의 공연이 연례행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연장인 금포림 일대의 제방에 찔레를 심어 <장사익찔레꽃둑방길>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넘은 찔레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국 어느 곳이나 찔레 없는 곳이 없지만 이런 연유로 실매리는 노래 <찔레꽃>의 고향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고, 장사익의 고향이 산청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올해도 여기 궁벽진 산골에 하얀 찔레꽃이 순박하게 흐드러지고

그 향기는 슬프게 흩날리고 있습니다.

 

문인들은 흔히 매화향기를 예찬하곤 하지만 그 향이 가장 진한 건 아마 찔레가 아닐까 합니다. 진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촌스럽고 정겨운 우리의 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노랫말은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슬프다고만 하지 왜 슬픈지 이유도 없습니다.

좋은 노랫말은 아니지만 일견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청명한 가을날 햇살이 너무 눈부셔 이유도 없이 서럽고 눈물이 나오는 경험을 하곤 하니까요.

 

이 노래 가사를 만들게 된 배경을 옮겨 봅니다.

 

 

"힘들고 어려울 적인 90년대 초인데. 그때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은 다 져버려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 다 져버려요. 그런 다음에 장미꽃이 피는데 넝쿨장미 같은 게 아파트 밑에 펴있는데.

당시 저는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데가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때 아파트 밑으로 차를 타러 내려가는데, 빨간 장미가 아파트 옆에 있잖아요. 맨날 예쁘다 예쁘다 했는데 어느 날 그 주변으로 꽃향기가 나는 거예요. 이게 장미향기인가? 해서 장미꽃에 코를 갖다 댔는데 그 향기가 안 나는 거예요.

 

, 어디에서 나는 거지? 꽃향기를 따라 주변을 찾아보니 그동안 눈에 안 보였는데 하얗고 소복한 찔레꽃이 피어있는 거예요. 찔레꽃이 잎사귀가 짙은 게 장미잎사귀와 비슷해요. 화려한 장미꽃 뒤로 숨어서 별볼일없이 돋보이지 못하고 거기서 조용히 향기를 내고 있던 거예요.

그때 울어버렸어. 세상이 그렇잖아. 폼잡고 있는 사람만 보이고 진짜 아름다운 소시민들은 돋보이지가 않잖아요. 거기서 딱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는 거예요"

 

마흔여섯 늦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공감이 갑니다.

 

 

 

 

 

 

이 가시 때문에 '찔레'가 되었습니다.

내 어릴 적 시골에서는 찔렁이라고 했습니다. 봄이면 아이들은 어린 애채를 꺾어 먹곤 했지요.

 

 

 

 

 

 

 

 

 

 

 

 

 

 

 

벽촌 골짜기에 꽃향기가 가득할 무렵

그의 목소리도 골짜기에 가득 울려 퍼집니다.

 

첫해 공연에 참가했더니 공연일정을 매년 문자로 보내줍니다.

올해도 불원천리 찔레꽃을 듣고 찔레꽃 향기를 맡고 왔습니다.

 

 

피를 쏟듯이 토해 내는

찔레꽃의 향기와

장사익의 절규와

더불어

올해도

우리들의 이야기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설렘과 그리움

그리고 슬픔입니다.

 

 

 

 

 

촌사람들 공연 호응도가 끝내줍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 소리, 추임새.

신나지도 않는 노래인데도 자리에서 일어나 춤도 추고.

록그룹 콘서트 못지않은 열기로 충만합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가수는 저러다 큰일 나지 싶게 더 목청을 돋우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산청을 비롯한  지리산 일대의  사람들이 보통 문화예술적인 흥이 많습니다.

이 지방에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되는 게 나름 근거가 있는 것같습니다.

 

 

 

찔레꽃이 피면 이젠 깔축없는 여름입니다.

땅거미가 지면 무논 개구리들소리 요란한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 여름밤이 찾아듭니다.

어둠이 내리면 찔레 꽃잎은 더 하얗게 빛을 발합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하는 또다른 <찔레꽃> 노래가 있습니다.

 

 

찔레꽃은 하얀색입니다. 붉은 찔레꽃은 없습니다.

아마 작사가는 찔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추측합니다.

그저 꽃이니까 붉으려니 막연히 썼을 거라는.

 

아 물론 붉은 꽃잎도 있습니다. 같은 나무에서도 돌연변이처럼 어쩌다 한두 송이 붉은 꽃잎이 있긴 합니다.

다만 그뿐이지 노래 가사처럼 붉은 찔레꽃은 아예 없습니다.

 

 

 

 

 

        장사익 작사 작곡 노래 :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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