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인천 배다리 골목

설리숲 2024. 5. 8. 23:12

 

배다리는 동인천역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도원역으로 가는 중간에 있다.

 

 

기껏 자동차를 만들어 놨더니 이젠 걷는 게 좋다고 어깃장을 놓질 않나, 문명과 부의 상징인 신발을 신으면서 뻐기고 다니더니 이젠 맨발이 좋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사람이 간사한 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옛것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이 내재돼 있어서일 것이다.

하회마을 등 옛 고샅을 거닌다거나 고궁 담장을 걷는다거나 오래도록 낡은 찻집을 부러 찾아간다거나 그런 일들이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

골목이라 하지만 실은 골목이랄 수도 없다. 그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여섯 책방이 있을 뿐이다.

가 보지 않고 상상하는 레트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어쨌든 책방에 들어가면 자신이 무슨 인텔리겐치아가 된 듯한 묘한 허영기가 생기곤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이 그러니 책을 뒤적거리는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그러리라는 착각이다.

병원엘 가면 다른 사람들 눈엔 나도 환자처럼 보일 것이다.

 

그따위 허영기는 개나 줘 버리고 제발 좀 책을 읽자. 책 좀 보자.

그러나,,, 이다.

나는 머리 복잡한 소크라테스보다 골 빈 돼지가 좋다.

 

 

 

 

 

 

 

 

 

 

 

 

 

 

 

 

 

 

나비, 날다.

 

이 주인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다행히 문을 안 열었다.

문을 열었으면 여기까지 왔으니 예의상 얼굴 한번 디밀었을 테고 그건 기꺼이 하는 행동이 아니다.

 

 

 

 

 

 

 

 

 

 

 

 

 

 

 

 

 

 

 

 

 

빨래터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잔 우아하게 마시는 것을 끝으로 레트로 감성에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면 영락없이 삭막하고 둔중한 도시풍경이다.

 

 

 

 

 

 

 

 

 

 

 

동성한의원.

옛 간판을 그대로 두어 한의원이지만 역시 책방이다.

이것도 아까의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운영하는 책방이다. 문을 열되 주인은 없는 개방서점이다.

 

그가 혹 이곳에 있을지 몰라 살그머니 문을 여니 모르는 여자 셋이서 찻잔을 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다행이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잠시 연인이었던 사람을 대면한다는 건 불편하다.

 

 

 

 

 

 

한의원이지만 침 안 놓아요.

 

 

 

 

 

 

성냥박물관.

볼만한 게 그닥 풍성하진 않지만 한때 인간사를 지배했던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풍성했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노골적인 여성비하와 성기에 대한 외설적인 가사를 붙여 노래했던 그 유명한 성냥공장의 시작이 인천이었다.

우리 생활에서 물과 쌀만큼 긴요했던 성냥이었다.

밥을 먹어야 했고 난방을 해야 했다.

저녁이면 등잔이나 남포등에 불을 붙여 집안을 밝혔다.

 

집집이 전기가 들어오고 보일러가 돌아가는 시절이 되었어도 성냥은 필요한 물건이었다.

걸핏하면 정전이 되던 때라 상비품인 양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많은 가정에서는 곤로에 불을 붙여 국을 끓였고, 꺼진 연탄을 피우기 위해 성냥을 그어대곤 했다.

그러기에 그 시절 집들이선물로 으뜸이 성냥이었다.

 

 

요즘은 흡연자들이 성냥 대신 라이터를 쓰지만 시골 다방에 가면 육각 UN성냥이 더러더러 놓여 있기도 하다.

 

 

 

 

 

 

 

 

 

 

 

이제 이곳도 시나브로 변해갈 것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조금씩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삽시간에 삭막하고 둔중한 도시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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