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바다로 바다로 걷다가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여수 향일암이 있다면
산청의 정취암은 산기슭으로 오르다 오르다 벼랑 끝에서 만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천애절벽의 이 암자엘 오르기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형버스도 문 앞까지 다다른다.
‘벼랑 위의 연꽃’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산청 5경 중의 하나라니 관광객이 많이 오나 보다. 암자의 규모에 비해 주차장도 크다.
산청에서 지낼 때는 가까우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여건이었지만
마음만 있었지 게으름 피다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이제서 먼 길을 다녀오다.
원래는 正趣寺였다.
정취보살(正趣觀音菩薩)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붙인 이름일 거라는 추측이다.
정취보살은 구도의 길을 떠난 선재동자가 스물아홉 번째로 만난 선지식이라 하는데 등장부터 화려하고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였다고 한다.
몸에서 엄청난 광명을 발하니 해와 달과 별, 번개의 빛이 무색하다. 보살의 광명 앞에 그 어떤 광명도 빛을 내지 못한다.
정취보살의 광명은 모두 육도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비추어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비장하면서도 장엄한 광명이라고.
이 암자는 정취보살을 본존으로 모신 유일한 도량이다.
연유는 모르지만 지금은 淨趣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취. 고요함에 다다른다? 풍광을 보면 일견 그럴듯도 하다.
천애절벽 위의 사찰이라 전망이 끝내 준다.
다만 부연 연무로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사바세계는 늘 저와 같다는 새삼스런 생각.
우리네 인생 또한 저와 같으니
삼라만상은 불확실한 진애의 세계.
전에 아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연예인이었는데 요즘은 유튜버란다.
직업이란 건 나의 노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인데, 유튜버가 남에게 이익을 주는 직업인가는 의문이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직업에 대한 의미와 사고도 재정립할 때가 된 것 같다.
한국사람들은 어딜 가나 돌만 보면 쌓아 올린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신기해하는 것 중의 하나.
나도 공감한다.
그토록 우리는 신앙심이 깊고 비원이 많은 걸까.
이런 거 말고 실생활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가령 음주운전 따위 하지 말고.
돌 쌓는 거야 내가 참견하지 못하지만 생각없이 무작정 올려놓다 보니 자칫 돌무더기가 쓰러지거나 무너져 내릴 위험요소가 많아 행여 아이라도 다칠까.
좀 자제했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이 흐르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으로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먹고 사는 것들은
시간과 함께 소멸해 가고
시간 속에서 길을 가는 이들은
자신의 안으로 흐르는 강물이 된다.
내 안에 길이 되어 흐르는 강물이 있다
그곳에는 산과 들과 바람과 구름이 떠가고
아이들 뛰노는 소리 물굽이치며 흐른다.
수완
절정으로 무르익은 봄도 시나브로 사그라져 가는 날이었다.
봄꽃들의 화려한 라스트댄스라고나 할까.
푸르른 봄 하늘 아래
정취 좋은
정취암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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