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풍광이 좋기로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금오산 약사암이다.
여길 가을에 가고 싶었는데 게으름 피우느라 여태 미루다 봄에 올랐다. 물론 가을만 좋은 건 아니다. 신록이 짙어지고 나뭇잎 무성한 이 계절의 산행도 좋다.
원래 등산은 좋아하지 않지만 오로지 약사암을 목적으로 오르기로 한다.
정보로는 금오산 오르는 게 만만치 않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내가 이제껏 올라본 산행 중 가장 가파르고 힘들었던 경험이 되었다.
일반적인 들머리인 금오산호텔 코스로 들어선다.
입구 풍경이 아름답다. 여기는 아주 좋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내내 가파른 계단이다. 가파른 계단은 금오산 정상까지 계속된다.
그래도 5월의 숲은 아름답다.
부처님오신날이다.
산길에 인파가 많다. 해운사에도 인파가 가득하다. 규모가 그닥 크지 않은 해운사 경내에 발디딜 여지 없이 인산인해다.
마침 공양시간이다.
오늘 같은 날은 절밥 먹는 것도 의미가 있고 또 그러고 싶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많이 붐벼 비집고 들어가 밥을 얻어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법당에 삼배합장만 하고 단하에서 세존 관욕하는 것만 구경하다 다시 산정을 향했다.
이미 몸은 더워 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천상천하유아독존.
관욕의식은 처음 보았다. 부처의 몸을 씻음으로써 내 영혼도 청결해진다는 의식이다.
대혜폭포
도선굴
폭포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올려다보니 웬수 같은 공포의 오르막이 또 이어진다.
그래도 틈틈이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이 좋다.
이쯤까지 올랐는데도 여전히 저 위 산정이 요원해 보인다.
나무데크 계단도 있고 돌계단도 있고 미처 계단을 만들지 못한 암벽도 있고.
아무튼 현월봉까지 사뭇 이런 가파른 오르막이다.
드디어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이다.
과연 일망무제 전망이 최고다. 사바가 발 아래다. 산행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상에 올라서 느끼는 이런 희열감은 또 얼마나 좋은가.
여기서 발 아래로 바로 보이는 게 약사암이다. 이 뷰 하나 때문에 천신만고 이곳에 오른 것이다.
푸른 계절 5월이다.
약사암에 내려섰다. 마당 앞 난간 밑으로는 천애 절벽이다.
암자가 들어앉은 자체거 천애절벽이다.
다시 또 중놈들을 욕한다. 도대체 절을 왜 이런 데다가 지어 놓느냐 말이지.
절의 정체가 부처의 말씀을 설법하는 것이라면 중생들이 찾아가 들을만한 곳에 있어야지 이런 험준한 산꼭대기까지 찾아오라는 심뽀가 심히 고약하다.
오죽하면 부처님오신날인데도 도량이 한적하다. 저 밑 해운사는 발 디딜 틈 없이 바글거리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던데.
그래도 어쨌든 여기도 봉축의 날이라 탐방객들에게 과일 주먹밥 등을 내어준다. 한쪽 구석 자리에는 온수와 커피도 구비해 놓았다.
속으로 욕은 했지만 주먹밥 하나를 받아 공양하고 뜨거운 믹스커피도 마셨다. 이건 부처께서 중생에게 주신 법문이다.
어쨌거나 약사암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멋진 풍광인 건 인정한다.
하산은 법성사 쪽으로 내려왔다.
이 코스는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지라 길이 몹시도 함하다. 저쪽의 게단 같은 정비가 미흡하다. 가끔은 미끄러져 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하산했다.
하산길의 끝에는 법성사가 있다. 규모가 제법 있는 도량이라 탐방객이 역사 엄청 많다. 길에는 수많은 차량들로 가득해 관리자들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케어를 하는데도 오가는 차에 들고나는 차들, 주차하는 차들로 뒤엉켜 혼잡의 극치다.
화장실은 그 지역의 얼굴이라는데 상태가 몹시 불량하다.
사람이 많이 찾은 날이라 그렇다고 변명을 하겠지만 대개는 이 근동 사람들이니 이 지역의 문화의식 수준을 흉보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오신날이자 ‘스승의날’이기도 하다.
나는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CBS가 메인이다.
그날 아침부터 밤까지 CBS라디오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단 한번도 부처님오신날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 날 방송의 테마는 스승의날이었다. 스승에 얽힌 사연들과 그에 관한 삼행시 짓기 등등. 노래도 선생님에 관한 노래로 일관했다. 의도적인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눈물겨웠다.
아 역시! CBS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았다.
불교방송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같이 축복하고 캐럴도 방송하는데.
다시 금오산을 올려다 본다.
아, 저길 또 가라면 도저히...
가을 무렵에 다시 간다면 모를까.
싱그런 5월 하루의 약사암 탐방기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다.
송창식 : 푸르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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