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아침 느지막이 구천동 게곡을 오른다. 백련사에 도착하여 법당에 삼배합장하고 하도 볕이 좋아 층계에 앉아 한참을 해바라기하다 하산하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등산복 차림의 여자 하나. 그때부터 자꾸만 신경이 뒤꼭지에만 간다. 멀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꼭 그 거리인 채 내..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5.24
멀어지기 "만약 나 죽으면 너 울어 줄거니?" 여행을 떠나면서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전화선 너머 그는 잠시 침묵했다. 당혹스러웠으리라.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우리가 무슨 연인이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오만가지 생각이 무수히 드나드는 게 전화선을 통해서 내게 전달된다. 이윽고..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5.24
외과병동 오전에 편지를 받다. 강릉의 한 병원. 입원한지 겨우 나흘 째인데 벌써 발빠르게 병원으로 편지를 띄워주는 친구가 하나 있다. 속도화 디지털화만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 이 친구는 굳이 구식 종이편지를 고집한다. 나 사는 산골로 그의 편지는 무시로 올라오곤 하는데 내 장기도보 중에는 보낼 주소가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5.22
길은 나서야겠는데 눈은 점점 내려 쌓이고 <부산광역시> 그 밑에 <금정구>라 씌어진 이정표 그날, 가장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던 그 여름 그날, 저 이정표가 보이는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무엇을 보려 무엇을 얻으려 그토록 천신만고 길을 걸어왔는지 나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정표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기성을 지르..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5.22
나는 도사님 너는 왕꽃선녀님 내 이웃에 한 노옹이 계신다. 나는 그 분을 삼촌이라 부르는데 삼촌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신다. 웬 선생님? 아무것도 가르친 게 없는데. 그래 처음엔 선생님이라 그러지 말고 홍림아, 하고 부르시라고 여러 번 일러 드렸는데 그래도 끝까지 선생님이었다. 한데 선생님이라는 그 호칭이 근래 바뀌었다..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5.20
화개장터 불에 타다 섬진강변의 매실농원, 연일 내리붓는 불볕. 온통 초록색의 세계다. 보기엔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한 폭의 풍경화다. 그러나 정작 그곳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정말 고되다. 잠시도 쉬지않고 움직이는 사지,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여름해는 왜 그리 긴지 일해도 일해도 태양은 아직도 중천..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4.14
고민 매실농원의 일이 대강 끝났다. 많은 날은 아니래도 그간의 노동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었다. 이러니 다들 농촌을 기피하고 떠나는 거겠지. 정선 숲으로 돌아간다. 아니다. 아직 갈길을 모르겠다. 좀더 길위에서 헤매야 할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진주의 이 군이 생각난다. 아니 솔직하게 미스 최가 생각..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4.13
그 여성 이곳은 깊은 산골짜기.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일년 중 한때는 제법 번화할 때가 있다. 바로 요즘, 산나물철이다. 우리 마당이 이른바 주차장이 되곤 하는데 나물꾼들이 끌고 온 차들은 평균 하루에 서너 대 정도 된다. 하루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리 골짜기를 다녀가는 셈이다. 우리 집.. 서늘한 숲/숲에서 2005.04.13
구절리로 떠나다 조금 전 드라마시티를 보았다.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쁘고 잘 빠진 여자가 나오면 얘기가 틀려지지만...... 한데 조금 전의 그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그리 예쁘거나 잘 빠진 여자는 아니어도 진득하니 앉아서 끝까지 다 보았다. <구절리로 떠나다> 단지 그 제목이 좋고 반가워서..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