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내 고장 괴산에 대한 르포를 올릴 기회가 되었다.
별로 볼것 없는 촌동네지만 그래도 가을이라고 제법 멋들어진 풍경이 있어 다녀왔다.
문광호수 그리고 은행나무길.
타지인들은 이미 많이 다녀갔지만 정작 지역민인 나는 처음이다.
이맘때 주말이면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이곳으로 진입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번 가을엔 기필코 진입하리라 작년부터 잔뜩 별렀던 터다.
남들이 오기 전에 먼저 간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름 여유롭게 도착해보니
헐~이다.
이미 주차장은 만차이고 좁은 국도 노변으로 끝도 모르게 차들이 나라미를 섰다.
아뿔싸. 지척인 내가 이렇게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또 실패다.
저 사람들은 어디서 왔으며 도대체 집에선 몇 시에 떠나왔더란 말이냐.
많이 유명한 관광지라 새벽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었나 보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기껏 부지런을 떨었지만 일찍 일어난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셈이다.
십리는 되게 먼 곳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갔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인데 이미 왁자지껄 사람들이 넘실댔다.
기껏해야 300미터 남짓 짧은 길인데 어찌어찌 은행나무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져서 한 해 두어 번의 주말이면 이렇게 몸살을 앓곤 한다.
안개가 짙었다.
부옇게 어둠이 걷히며 안개는 더욱더 짙어졌다.
덕분에 안개에 잠긴 호수의 몽환적인 풍광을 만난다.
사진에서 보던 그 풍경을 나도 담아 본다.
새벽 이슬, 깨어나는 아침.
하긴 호수는 더 자고 싶었어도 웬놈들이 저렇게도 일찍들 와서 지랄들을 해대니 깨어날 수밖에 없었겠다.
안개는 아주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었다.
한 10시쯤 되니 이윽고 안개 걷히고 밝은 햇살과 함께 청명한 하늘, 전형적인 가을날이 되었다.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나무는 하루 종일 노랑의 향연을 베풀었다.
건듯 바람만 불어도 화르르르 무시로 날려 흩어진다.
겨울이 바투 다가오고 있었다.
인생 말년을 황혼(黃昏)이라 하듯,
저 노란 잎들은 얼핏 황혼을 연상하게 한다.
짜장 저 잎들은 언제라도 찬바람이 거세게 불면 죄다 우수수 떨어져 사라질 것이다.
곧 은행잎은 겨울의 전령사다.
저 황혼(黃昏) 잎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내 좋아하는 색 노랑.
그래서 애틋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한 묘한 이중성의 감성.
파트리샤 카스: Chanson Si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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