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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가족 모임

띠앗머리가 구순하긴 하긴 하지만. 흔한 ‘현실남매’ 같은 가풍은 아니어서 치고 받고 싸우고 못된 짓은 없이 그냥 데면데면한 형제들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평생을 자랑처럼 말한 게 우리 애들은 한번도 싸우질 않아서 그게 난 제일 좋아. 싸우질 않으니 정도 그리 깊지는 않을 터, 다 장단점이 있겠지. 부모님이 계시면 그 덕에 강제로라도 모여서 얼굴 보고 음식 먹고 하였지만 이후로는 구심점이 없으니 모일 명분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선견지명일까. 우리 형제들은 언제부턴지 연말이면 한번씩 모이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는데 이제껏 잘 지켜 왔다. 처음엔 번갈아 가면서 누구 집에서 개최를 했지만 나이가 먹고 움직이기 벅찬 연륜이 되니 그것도 만만하지가 않다. 이제는 누구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하루 숙박하면서 지내는 편..

거센 바람 거친 파도 가파도

섬과 바다는 광풍이었다. 가파리(가오리)를 닮아 가파도라 했다던가 파도가 많아 가파도라 했는가. 운진항에서부터 섬까지의 짧은 뱃길은 높은 파도로 일렁거렸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은 늘 이리도 바람 세고 파도가 높다고 했다. 그러니 이 섬의 이름은 파도가 거센 加波島, 또는 加波濤라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상동포구에 도착했지만 거센 파도에 여차하면 전복될 듯이 배는 위태해 보였다. 선장은 여기 바다는 늘 이렇다는 방송으로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가까스로 접안을 하고도 선체는 널뛰듯 오르내렸다. 위태롭게 선착장에 오르고 나서야 승객들은 십년감수 마음이 놓였다. 가파도는 넘실대는 보릿물결이 장관이라는데 수확이 끝난 들판은 텅 비었다. 허허롭다. 첫 추위를 코앞에 둔 늦가을 들녘 같다. 빈..

영랑생가 그리고 모란 이야기

6월의 꽃, 하면 모란이 젤 먼저 떠오른다. 화투장의 6월이 목단이기도 하고 김용호의 시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가곡 의 노랫말에도 6월의 꽃으로 나온다. 모란, 하면 역시 김영랑이다. 영랑생가에 또 다녀오다. 5월 초였다. 그러나 모란은 없다. 꽃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초당 정원의 모란들은 열매만 달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른다. 모란을 보려고 영랑생가를 찾은 게. 그러나 또 실패. 도대체 언제 가야 볼 수 있는겨? 4월에 가야 하나벼. 영랑생가 뒤울 대나무숲 뒤쪽 언덕에 세계모란공원이 있다. 거창하게 ‘세계모란공원’이라기에 규모도 있고 온갖 모란이 만발하려니 했더니, 그저 여느 조그만 공원이나 다름없고 모란도 그저 그렇다. 그마저도 이미 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영랑생가에서는 보지 못한 꽃이기에..

도시투어 아산 지중해마을

문득 아주 막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혹 뜬금없이 지중해가 생각나지는 않는지. 그럴 때 여기로 오세요. 여기는 아산 탕정면, 유명한 지중해마을입니다. 이 일대는 원래 포도농산지였는데 2005년부터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이 마각의 손을 뻗기 시작했다 합니다.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할 게 없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시티’라는 대규모 단지건설이 추진되고 시행되면서 주민들은 정든 마을을 잃게 되었습니다. 찬성과 반대, 보상협의, 어느결에 돈냄새를 맡고 몰려든 외지인들. 농사 밖에 모르던 무지렁이 주민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고 고향을 버릴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64명의 주민들은 의기투합하여 대책을 강구한 결과가 현재의 ‘지중해마을’입니다. 어리숙하고 ..

강진 병영마을 담장길

강진 병영면은 조선시대 병마절도사 영이 있던 지역이다. 그 이름을 그대로 남겨 병영이 되었다, 이름만으로도 군대주둔지임을 알겠다. 오늘은 이 병영 한골목이다. ‘한골목’은 큰골목의 의미도 있고, 막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골목에 들어서면 막다른 길이 없고 어느 곳으로든지 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마을이 독특한 담장으로 구성된 ‘담장마을’이다. 조선이라는 동방 미지의 한 나라를 최초로 소개한 하멜. 제주도에 표류해 와서 생존한 일부는 조선 한양에 끌려갔다가 이곳 강진군 병영에 억류되어 7년간을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했다. 뜻하지 않은 이역생활은 물론 낯설고 두려웠을 것이다. 마을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고국 네덜란드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들이 마을에 살면서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 지금..

임자도 튤립을 보았나

신안 임자도 그간은 배를 타고 건너다니다 작년 봄에 다리를 개통해서 무시로 넘나들 수 있게 됐다. 유명한 대광해변 튤립 정원. 코로나로 그간 축제는 중단되었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꽃은 피고. 네덜란드가 원산지라는 지극히 한국적이지 않은 낯선 식물. 이국적이어서 그만큼의 매력을 지닌 꽃. 축제는 안해도 정원은 개방해 원래는 5천원인 입장료를 3천원으로 인하했다. 내가 갔을 때는 거의 끝물이어서 입구에 ‘낙화했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그래도 아쉽지 않게 내 생애 가장 많은 꽃송이를 본 날이었다.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는 꽃이란 건 실은 식물의 성기다. 고상한 동물인 사람이 성기에 반하고 홀리는 천박함에 좀은 자존심 상하지만, 사람끼리도 이성에게 그렇게 끌리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천박하다니 어..

바닷가 작은 역, 송정

간이역이다. 많은 횟수는 아니라도 하루 종일 기차가 드나든다. 막연히 동해바다 어디쯤이라고만 생각하고 내린 송정역. 지도를 보니 부산이다. 아하, 그 유명한 송정해수욕장이다 늦은 밤인데도 해변은 휘황찬란하다. 이미 피서철은 끝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렇게 야경이 호화로울 정도면 한여름에는 엄청나게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송정역에서 민박촌이 있는 뒷골목을 지나면 바로 해변이다. 해변가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민박촌 골목과는 극과 극이다. 고급 모텔과 펜션, 카페 음식점등 휴양객들의 돈을 끄집어내는 시설들이 대부분이다. 숙박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모텔은 많으나 죄다 고급 러브호텔이다. 이런 델 혼자 들어가기란 영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보통은 6~7만원이지만 피서철도 아니고 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