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병영면은 조선시대 병마절도사 영이 있던 지역이다.
그 이름을 그대로 남겨 병영이 되었다, 이름만으로도 군대주둔지임을 알겠다.
오늘은 이 병영 한골목이다.
‘한골목’은 큰골목의 의미도 있고, 막혀 있지 않고 열려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골목에 들어서면 막다른 길이 없고 어느 곳으로든지 다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마을이 독특한 담장으로 구성된 ‘담장마을’이다.
조선이라는 동방 미지의 한 나라를 최초로 소개한 하멜.
제주도에 표류해 와서 생존한 일부는 조선 한양에 끌려갔다가 이곳 강진군 병영에 억류되어 7년간을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했다.
뜻하지 않은 이역생활은 물론 낯설고 두려웠을 것이다. 마을의 큰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고국 네덜란드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들이 마을에 살면서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하멜식 담장이다. 지금 있는 것은 그간 개보수한 거지만 그 시절의 양식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의 전통 담장과 흡사해 더 정감이 가는 전통 네덜란드식 담장이다.
특이하게 담장의 높이가 무척 높은데 일설에 의하면 키 큰 하멜 일행이 다니면서 민가 안을 넘겨다보거나 부녀자들을 희롱하는 일이 빈번해서, 또는 말 탄 관아치들이 넘겨다보아서 주민들이 담장을 높였다고 하는데 설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혹 뒷날 성가신 관광객들이 몰려들 걸 예감했을까.
담이 높은 것은 아마 저들의 신장에 기준해서 고국에서의 그것처럼 맞춘 게 아닐까 한다.
빗살무늬로 돌을 박아넣은 이 독특한 양식이 네덜란드의 전통 담장이라 한다.
하멜 일행이 이곳에서 억류생활하는 동안 주민들의 담장쌓기에 지대한 관여를 했다는 추정이다.
우리는 기꺼이 하멜을 우리 역사 속의 인물로 기록했다. 조선을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니 우리 입장에선 위인일 수도 있다.
하멜 일행은 표류하다가 불의에 제주도로 상륙했고 체포되고 억류되었다. 원하지 않는 이방에서의 억류생활이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외국에 가서 이유도 없이 여러 해 잡혀 있다면 전쟁을 불사한 외교분쟁감이다. 하멜의 조선에 대한 감정은 당연 분노일 것이다.
이곳 강진에는 7년간 억류되었다. 병영성을 쌓을 때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중노동을 했지만 그들에게 노임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으로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간 후 하멜은 동인도회사에 진정서를 넣었다. 조선으로부터 노임을 받아내기 위한 보고서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하멜표류기>다. 이 문서 제목도 한국의 입장에서 지어낸 왜곡된 제목이고, 원제는 <스페르베르호의 불쌍한 항해일지>다
제주도 등 하멜 일행이 거쳐 간 지방마다 그들을 기리고 기념관 등을 만들어 우리 역사의 위인으로 찬양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 조선이란 나라는 미개하고 몰염치하고 난폭한 족속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 대한 끔찍한 기억과 분노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은행나무가 이 나무로 추정된다. 수령 800년이라고 한다.
문서에서 하멜도 노거수나무라고 표현한 바 그때도 저렇게 거목이었을 것이다.
나무가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날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텐데. 거짓 역사와 조작된 역사를 근절할 수 있을 텐데.
남도의 봄은 이미 이울어 집집이 담장 아래 작약이 소담스럽다.
난 아직도 작약과 모란을 구분을 못하겠다. 가까이서 둘을 놓고 비교하면 얼추 알겠지만 먼발치로는 도대체 모르겠다.
다만 시기적으로 모란이 지고 뒤이어 작약이 필 때라 그런 줄 알지.
꽃잎. 지고
또
한 세월이 저만치 가고
있네.
담장 아래 가득 머물렀을 아름다운 봄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이곳은 시방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Family Of The Year :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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