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기차 타고 1박 2일

설리숲 2023. 2. 23. 22:22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예전에 한번 충주역에서 진행한 열차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후로 충주역이나 제천역에서 특별관광열차 일정이 있으면 공지를 보내 준다.

 

이번에 <호캉스 1박 2일>이라는 테마로 부산을 간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호텔 바캉스라는 신조어 ‘호캉스’가 나쁜 말은 아닌데 좀 스멀거리는 게 어감이 좋지 않다. ‘호빠’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낱말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호텔은 구미가 당기지 않지만 방문지가 송도해상케이블카, 태종대, 행동용궁사, 부산X더스카이, 그리고 해운대라 가보고 싶었던 태종대와 해동용궁사가 있어 참가신청을 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비용이 29만 5천원. 비싼 편이다. 나 혼자 다녀오면 절반도 안될 비용이지만 때론 다른 이의 리딩에 편하게 따라다니고 싶기도 하다.

 

 

 

주덕역에서 탑승했다.

엷은 안개가 낀 이른 아침이었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날이았다.

예상은 했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런 패키지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수십 명씩 조를 지어 맨 앞의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는 광경은 영락없는 단체 중국관광객들의 모습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노인들인 그룹의 일원으로 몰려다닌다. 하기사 노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젊은 50대와 40대도 더러더러 보이고 어린아이들도 여럿 있으니 그들에게는 나도 역시 노인일 테다.

이럴 때 좀 서글프다. 나는 노인이 아닌데 어린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로 인식된다는 것.

 

 

 

준비해준 도시락을 먹고 나니 부산역이다.

과연 내가 예상했던 그 광경이다. 깃발 든 가이드 뒤에 7개조로 나뉜 인원이 조별로 색이 다른 패찰을 목에 걸고 유치원생들처럼 줄 서 있는 그 풍경.

 

 

맞아도 될 만큼 비가 흩뿌렸다. 첫 번째 방문지는 송도 해상케이블카다.

줄곧 케이블카를 반대하고 비난해 왔다. 참가신청을 할 때부터 딜레마가 있었다. 선택이 있었다. 케이블카와 요트 중 하나였다. 요트는 별로 생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케이블카를 선택한 거였다.

이왕 이리 되었으니 인생에 딱 한번만 타 보자. 이게 마지막이다.

그리고 요트를 선택 안하기를 잘했다. 부슬부슬 비 흩뿌리고 으실으실 바닷바람도 차가운데 요트가 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날씨였다.

 

 

 

 

 

부연 연무 속의 송도해수욕장.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송도 해안절벽.

남파랑길의 한 구간으로 절벽에 데크로 설치한 잔도가 여기저기 무너지고 파괴되었다. 태풍 힌남노로 인한 피해다.

인간의 짧은 소견머리가 낳은 광경이다. 절벽이라고 생긴 곳에는 너도나도 저런 짓을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저런 위험한 곳에 꼭 돈을 들여 흉물스런 구조물을 매달까. 철원 한탄강의 잔도를 보면 분노가 치민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날이 어두워 바다 위의 배들은 벌써 불을 켰다. 영사운드의 노래 <등불>이 떠오르는 날씨와 풍경이었다.

 

 

두 번째는 태종대.

어릴 때부터 전설처럼 간직한 태종대.

자살하기 좋은 곳.

 

한때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그런 류의 전설들.

그때 줄 맨 앞이 아닌 뒤쪽에 있던 사람이 먼저 죽었다고 한다. 새치기를 하다가 맞아죽었다고.

그런 전설이 있을 정도로 과연 태종대 벼랑은 떨어져 죽기에 천혜의 지형이다.

주차장에서 헉헉거리며 제법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호텔은 자갈치 지근이었다. 이제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자갈치나 국제시장 나포동은 몇번 돌아다녔기에 관두고 일찍 호텔방에 틀어박혔다.

호텔이라야 5만원짜리 모텔보다 나은 건 없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비싼 숙박료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진다. 내가 든 객실은 세면대 물이 배수가 안돼 많이 불편했다. 호텔이라면 뭐가 나아도 나아야 되지 않을까.

 

 

객실이 바다와 면해 있다.

밤이 젖어드는 부산 앞바다.

 

그리고

밤이 물러가고 아침의 부산 앞바다.

 

 

 

세 번째 방문지 해동용궁사.

사람 엄청 많다.

이곳 사진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하련다.

 

 

 

네 번째 방문지는 부산X더스카이.

서울의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곳이다. 100층이다. 해운대에 있다.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이색 풍경이 제법 볼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관광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달맞이고개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문탠로드와 달맞이길,

그리고 저 뒤쪽 청사포구도 보인다.

 

 

 

98층에 스타벅스가 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스타벅스란다.

그게 뭐라고 1등 2등 순위를 매기고. 별 시덥잖은.

1등은 어디라고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스카이 꼭대기에 보는 해운대.

해운대 해변에서 보는 X더스카이.

 

 

 

 

해운대.

역시 사람이 많다.

빗방울 흩뿌리던 어제와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봄 같은 날이다. 이런 주말 오후에 누구라고 나가고 싶어 안달나지 않겠는가.

참말 봄이 바투 다가온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여행.

관광열차라 조용한 여행이 애초 글렀다. 연신 방송을 하고 레크레이션을 하고. 아, 내 스타일엔 맞지 않는 프로그램여행이다.

 

 

주덕역에 내렸을 때는 한참 깊은 밤이었다.

 

돌아올 집이 있어 여행이 행복하다고 누가 그랬다지.

나의 여행은 돌아오지 않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늘 꾼다.

집이 없으면 돌아오지 않을까?

난 집이 없는데도 늘 떠난 제자리로 돌아오느라 애를 쓴다.

무력감을 느낀다.

 

어쨌거나 구경 한번 잘했다.

 

 

 

 

       제레미 스펜서 밴드  : Cool 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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