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논으로 가곤 했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도 진종일 들판을 뛰어다니고도 성에 차지 않아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또다시 캄캄한 개울가로 나갔다. 어두운 개울의서의 멱감기는 한낮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아이들이 쳐대는 물장구에 하얀 포말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낮에는 계집애들 때문에 빤스를 입었지만 밤이라 녀석들은 발가벗었다. 그 궁둥이가 어둠 속에서 또 하얗게 빛나기도 한다. 달이라도 뜨는 밤이면 물 위에 비친 아름다운 은결. 아이들은 물이 즐겁다.
여름밤에 아이들의 즐거움이 또 하나 있다.
또래보다 좀 나이가 들어 제법 의젓한 녀석들은 밤이면 동네 부인과 처자들이 목욕하는 걸 훔쳐보았다. 그러나 어둔 밤에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녀석들 속만 바짝 탄다. 좀 대담한 녀석은 랜턴을 준비하기도 한다. 매타작을 각오하고 벌거벗은 여자들에게로 전짓불을 비춘다. 여자들의 비명소리. 거친 욕설을 하는 아줌마도 있다. 그러나 아주 순간적이기 때문에 역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냅다 튀어야 한다. 도망가는 녀석들의 뒤로 걸쭉한 아줌마의 욕설이 뒤따라온다. 뉘집 자식인 줄 번연히 알지만 그것으로 끝이지 이후로 녀석들을 찾아가서 혼내거나 그 집 부모한테 이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름밤, 들판에 나가면 개똥벌레가 지천이었다. 하늘엔 별이, 땅에는 반딧불이가 세상을 수놓았다. 전에 제주도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다다랐을 즈음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휘황찬란한 도시를 보면서 어릴 적 개똥벌레의 반작거림을 연상했었다. 논두렁이나 방죽, 또는 개울가 풀섶 곳곳에 박힌 보석 같은 그것. 벌써 이슬이 내려 종아리 밑이 흠씬 젖도록 아이들은 개똥벌레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개똥벌레의 불빛은 시종 켜져 있는 게 아니다. 깜빡깜빡 켰다 껐다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그것을 잡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불빛을 보고 손을 휘저어 움켜쥐려 하지만 이내 불빛이 꺼져 보이지 않는다. 잠깐 틈을 주고 다시 불을 키지만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있곤 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이 개똥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어느 것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 CG로 합성한 것이지만 영상에서는 반딧불이가 시종 불을 켜고 날아다닌다. 감독이라는 사람들은 아마도 평생 한번도 여름밤의 들판에서 개똥벌레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개똥벌레를 잡아다가 병에도 넣어 보지만 갇힌 개똥벌레는 이후로 전혀 빛을 내지 않았다. 잡아서 손에 들고 돌아올 때부터 빛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개똥벌레는 사람의 손을 타면 불을 켜지 않는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을 할 뿐이었다. 병에 넣어둔 개똥벌레는 아침에 보면 죽어 있곤 했다.
모든 게 그렇듯이 다 사라져만 간다.
보석 같이 아름답던 그 개똥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똥벌레는 그렇다치고 아름답던 그 추억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저 생기느니 아파트단지요 회색 포장도로들. 시골 아이들도 이젠 개똥벌레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호기심도 없다. 시골에도 TV에 인터넷에 각종 오락기구들이 들어와 있으니 여름밤 멱을 감으러 개울로 나갈 일도 없고 반딧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집집마다 목욕시설이 있으니 처자들 밤목욕도 영영 구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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