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이를 잡았다.
등잔불은 침침해 뭐 뵈지도 않건만 너도 나도 내복을 벗어 솔기를 톺았다. 이놈의 이. 겨울만 되면 몸서리치도록 극성을 부렸다. 가려움도 면역이 되는지라 웬만한 건 그럭저럭 참기도 하지만 엔간히 물어야지.
아이들에겐 이 잡는 것도 재미였다. 내복을 톺다가 수퉁니 하나 발견하면 두 엄지손톱으로 고놈을 눌러 죽였다. 픽, 터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꼈다. 손톱으로 전해지는 느낌도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잠깐 사이에 양 엄지손톱은 놈들이 남긴 핏자국으로 벌겋다. 이야 피가 날 리 없지만 사람의 피를 빨아먹었으니 뱃속엔 피가 그득했다. 아이들은 그래도 그게 제 피인 줄은 모르고 잔혹하게 죽였다고 통쾌해했다.
그렇지만 내복의 이를 다 잡기는 어렵다. 내복을 벗어 화로에다 쬔다. 하면 놈들이 뜨거워서 스멀스멀 솔기에서 기어 나온다. 어느 건 불 위에 떨어져 죽고 눈에 띄는 건 손톱으로 눌러 죽였다. 그것도 고기라고 타는 냄새가 구수하다.
그렇게 저녁마다 잡아도 다음 날이면 또 내복에서 스멀스멀 활동을 하고 다녔다. 내복 솔기에 하얗게 서캐를 쓸어 놓는다. 이놈의 서캐들은 얼마나 단단하게 붙어 있는지 손톱으로 긁어내도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빨래를 해도 서캐는 안 죽었다. 옷을 양잿물로 삶아 빨아야 했다. 하지만 깨끗이 삶아 빤 내복도 한 이틀 입으면 또다시 이들이 기어 다닌다. 참 지독한 놈들이었다. 때론 밥 먹을 때 어디선가 떨어진 이가 밥상 위를 기어다는 걸 볼 때도 있다. 그러니 음식에도 떨어졌으리라는 짐작도 충분히 할 수가 있다.
옷뿐인가. 머리카락 속에 기생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지독한지 모른다. 하루 종일 머리를 긁고 다녀 피가 날 정도였다. 머리의 이는 빗으로 잡았다. 엄마가 싫다는 아이를 붙잡아 앉혀놓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린다. 워낙 참빗이 촘촘한지라 아이가 눈물이 삐죽 날만치 아프게 쓸어내린다. 아프지만 가려운 머리를 참빗이 긁어 주니 시원하다. 바닥에 머리카락과 허연 비듬이 떨어진다. 그리고 간간히 이가 떨어져 버르적거린다. 아이는 고놈을 잡아 역시 엄지손톱으로 눌러 죽인다.
모처럼 햇발이 따뜻한 날이면 아이들이 양지바른 벽에 옹기종기 모여 해바라기를 한다. 낮은 처마에는 발처럼 고드름이 내리고 흘러내린 지지랑물이 땅바닥에 흥건하다. 햇볕을 받은 머리카락이 따뜻해지면 이들이 또 스멀대고 기어 나온다. 언니가 동생의 머리를 헤집어 이를 잡아 준다. 머릿속에서 툭툭 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나중에 동물의 왕국에서 원숭이들이 서로의 머리를 헤집어 주는 것을 보고 나는 어릴 때의 그 정경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닥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내복의 이나 머리의 이나 봄이 되면 다들 어디로 가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옷 솔기마다 하얗게 들러붙었던 서캐들도 죄다 없어졌다. 약이 오른다. 비로소 이로부터의 괴로움이 없어졌지만 그제는 내복을 입을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이가 사라진 내복은 잘 빨아 장롱에다 넣어둔다. 그해 겨울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하여. 다시 또 찾아들 이들을 위하여 고이 모셔두는 것이다.
해마다 적과의 동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