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콩나물

설리숲 2017. 2. 2. 15:46


 쌀은 주렸어도 콩은 제법 여유가 있었기에 콩나물을 흔하게 먹었을 것 같은데 평소 밥상에 자주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루 바닥에다 삼베를 깔고 콩을 깔고 매일 물만 주면 되는 가장 구하기 쉬운 먹을거리였다.

 자주는 아니라도 이따금 밥상에 올라오는 콩나물반찬은 산골의 빈곤한 식생활에 그나마 숨통을 틔워 주던 것이다.

모내기나 벼 베기 따위 품앗이 때 논둑에서 먹는 기승밥에는 반드시 들어 있던 콩나물무침이다.

 

 햇빛을 보지 않게 천으로 덮어씌우는 게 중요한데 얼마나 컸나 궁금해 슬쩍슬쩍 열어보던 꼬마는 엄마한테 야단을 맞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콩나물시루란 말을 알지 모르겠다. 학창시절에 만원버스를 콩나물시루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걸 보기 힘드니 형체 없는 관용어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보통 닷새에서 엿새 정도 되면 콩나물을 뽑아 먹을 수 있다. 그 빠른 성장은 참으로 신기하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물만 줄 뿐인데. 요즘은 공장에서 하루나 이틀만에도 생산한다 하니 적절한 약품이 주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가리마다 붙어 있는 껍질을 일일이 하나씩 벗겨내는 게 큰 일이다. 식구가 많으니 다듬어야 할 양도 그만큼 많다. 엄마가 누나한테 이걸 시키면 누나는 처음엔 잘 하다가도 워낙 진도가 안 나가니 나중엔 그냥 대가리채 똑똑 떼다가 호되게 욕을 먹기도 했다.

 나도 어른이 돼 한동안 방에서 콩나물을 길러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콩나물 다듬는 건 여간한 수행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나도 예전의 누나처럼 대가리를 다 떼어 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들은 참으로 일이 많았다. 콩나물부터 해서 마늘 까는 일, 마늘 찧는 일, 항아리에서 간장 떠 오는 일, 눌어붙은 솥을 긁어 깨끗이 가시는 일 등등 남자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것들이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다. 식생활만 해도 그런데 게다가 빨래, 온갖 잔일들. 그러면서도 남편과 함께 밭일 들일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슈퍼우먼들이었다. 남편과 함께 들일을 하고 들어와서 남편은 어, 고단하다 하고 벌렁 누우면 그만이지만 슈퍼우먼들은 그제서 또 집안일들을 했다.

 혼자 살면서 수박겉핥기지만 이것저것 해 보며 옛 여인들의 노고가 (물론 지금도 다들 그런 노고를 하고 있다) 절실하게 사무치고, 그럴 때마다 페미니즘에 마음이 기울게 된다. 우리는 여자들에 대한 배려와 감사와 반성이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하고.

 

 세월이 지나도 콩나물은 여전히 맛있다. 시원한 국도 그렇고 매콤한 무침도 여전히 좋다. 내가 길러서 무쳐 먹은 콩나물은 그러나 별로다. 조리솜씨가 없어서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음식은 내가 만든 음식이다!


 시루가 아니어도 조그만 화분에 키워도 된다. ‘혼밥시대니 조금씩만 길러야 하다. 많으면 태반은 다 버리게 된다.

그런데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대가리 껍질 벗기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 그냥 사다가 먹어야지. 마늘 까는 것도 그러하니 다진 마늘을 사는 게 편하다. , 나는 무척 게으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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