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설리숲 2018. 1. 9. 22:11


홍명희의 <임꺽정>에 궁의 내시 이야기가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다쳐 고자가 된 사내들의 선택이 내시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일부러 고자를 만드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 입에 넣어 줄 양식이 없는 빈한한 부모가 그래도 임금님 있는 궁궐에 가면 굶지는 않으려니 눈물을 머금고 고자를 만들었다. 큰 돈에 대한 욕심에 아들을 거세해 카스트라토 가수를 만들던 서양의 비정한 부모들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성격이 다른 아픈 사연의 부모다.

옛날에 꼬마들은 대개 변소를 안 갔다. 문만 열면 그곳이 볼일 보는 곳이었다. 마당에 똥을 싸질러 눠도 굳이 엄마가 치우지 않아도 되었다. 개가 와서 깨끗이 먹어 치운다. 성미 급한 개는 아이 꽁무니에 지켜서서 아이가 똥을 누는 족족 먹어 치우고 더러는 아이의 똥구멍까지 핥기도 했다. 아이는 진저리를 치며 개 등때기를 메겨 팬다. 개는 머쓱해서 조만치 물러서곤 했다. 우리 또래까지만 해도 일상으로 보는 시골 농가의 풍경이다.

 이때 개에게 고추를 물리는 사고도 간혹 있었다. 불의의 사고라는 것은 대개 이런 사고가 아니었을까 한다.

 

 나의 유년도 역시 마당에서 똥을 즐겼다. 기억은 위 서술한 것이 전부이지만 나중에 누나들로부터 들은 일화가 있다.

 큰형수가 시집왔을 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 내가 멀리도 안 가고 꼭 대뜰 아래 앉아서 똥을 누더라고 했다. 누나들은 귀여운 막냇동생이 늘 하던 것이니 대수롭지 않았지만 큰형수는 몹시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밥상을 차릴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시도 때도 없이 대뜰 아래 앉아서 싸질러 놓으니 꼴도 꼴이려니와 냄새가 고약스러웠을 것이다. 큰형수 나이 열여덟이니 어린 소녀요, 어려운 시댁살이에 귀여울 리 없는 시동생의 똥이 보기 좋을 리 없다. 그래도 시부모며 시누이며 시동생이 우글대는 시집에 살면서 불평 한마디 할 수는 없었으니.

나중에 세월이 몇 십년 지나서 어머니, 즉 그네의 시어머니와 몇 번 다툰 적이 있을 때 그때 일을 초들어 대거리를 하더라고 했다.

 내 기억에 전혀 없는 유년시절의 편린이다. 나는 누나들에게서 또 큰형수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앞으로도 무진장 많을 것 같다. 나의 기억력은 얼마나 단편적이고 얕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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