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산골농가라 생화는 당연 농사일이었다. 해토머리부터 입동까지 부지런히 일은 해도 지긋지긋한 가난은 숙명이었다. 하늘 세 뼘인 산골에 농토가 많을 리 없고 농토가 많지 않으니 더욱 죽어라고 움직여야 입에 풀칠이나 했다.
아버지는 노상 들판에서 살았고 집안 일이 많은 어머니도 큰딸에게 일을 맡기고 들에 나가 일하는 때가 많았다.
나는 집에서 놀다가 개울가에서 놀다가 그것도 싫증나면 두 분이 일하는 곳에도 갔다. 더러 아버지 어머니가 논머리나 논둑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까시나무 그늘에서나 드실 일이지 뙤약볕 아래 그대로 앉아 밥을 떠 넣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떠 넣었다. 오로지 살기 위한 몸짓일 뿐이었다. 반찬도 없다. 시커먼 보리밥이 든 보시기와 역시 시커먼 막장을 담은 종지가 전부였다. 논배미 가에 여기저기 멋대로 자란 씸배나물을 꺾어다 막장 찍어 반찬으로 먹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려면 허기는 면해야 하니 밥맛 따위는 사치였다.
그래도 그 식사는 꿀맛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시장이 반찬이라 어차피 가난한 살림에 들판이 아니라도 그 이상 더 호식하는 식생활은 아니었다.
여전히 눈에 암암히 남아 있는 그 정경과 시커먼 막장, 보리밥, 그리고 씸배나물. 그렇게도 노동에 절어 세월을 쌓았건만 평생 셈평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의 부모들의 일생이 다 그러했다. 참으로 우둔하고 우직한 당신들. 사람의 한 살이는 힘겹고 고달픈 것임을.
씸배나물은 씀바귀다. 봄에 싹이 날 무렵엔 뿌리를 캐 먹었었고 싹이 자라 전초가 되면 씸배나물이라 하여 그 잎을 따먹었다. 봄의 씀바귀처럼 역시 쓴 맛이었다. 그런데 실은 쓴 나물이 제법 맛이 있다. 요즘 시골 사람들이 먹고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귀한 웰빙음식이라 할만하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가 여름 뙤약볕 아래서 먹었던 그 한 끼 음식은 요즘 시각으로 고급 식사였다. 쌀보다 훨씬 비싼 보리밥에다 역시 희귀해진 막장, 그리고 자연산 유기농채소인 씸배나물.
물론 처한 환경에 의해 그 신분의 고하가 정해지는 것이 세상의 씁쓸한 현상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