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은 꼭 저녁이면 법석을 떨어댔다.
산골의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농한기이니 해가 떨어지면 할 일이 없어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부터 반자 위에서 쥐들의 난리굿이 시작되었다.
머리쪽에서 시작하여 우당탕탕 발치께로 뛰어간다. 간단없이 반대로 뛰어간다. 축구 경기에서 전 필드를 골고루 누비는 선수들처럼 쥐들은 가로세로 대각선으로 어느 때는 원도 도는 것 같다.
아이고 저놈의 쥐새끼들 욕바가지는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이골이 나 그닥 신경 쓰지 않는다. 추수도 다 끝나는 늦가을이 되면 으레 집안엔 쥐들이 들어와 사는 걸 당연스레 여겼다. 어른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지내왔고 아이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알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궁해진 쥐들이 인가로 드는 것이다. 먹을 것 별로 없는 가난한 집에도 쥐들은 여지없이 들었다. 한시적 ‘기생충’이다. 쥐는 부자와 가난뱅이를 차별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있거나 없거나 놈들은 허구헌 날 반자에서 그리도 뛰어다녔다.
누워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궁금증도 생겼다. 도대체 저놈들은 왜 뛰는 건지, 아무것도 없는 반자에서 뛸 일이 없을 텐데. 그냥 걸어도 되는 걸 왜 저리 우당탕거릴까. 반자를 투명한 유리로 올려 그 꼬락서니들을 보고 싶었다.
층간소음이다. 아파트 소음은 댈 것도 아니다. 요즘 층간소음으로 갖가지 불미스러운 에피소드가 발생하곤 하는데 시골집에서 저 쥐들의 만행을 겪어 본다면 이웃간에 얼굴 붉히는 건 부끄러울 것이다.
천장은 쥐들이 싼 오줌으로 얼룩덜룩하다. 싼 똥이 쌓이면 제법 무거워저 천장의 어느 부분이 처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구멍이 나기도 하고 쥐똥이 방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허술한 지붕에서 비가 새면 반자에 스며들어 약한 부분이 뚫어진다. 뒴박질을 하던 쥐가 그 구멍에 빠져 방에 뚝 떨어지기도 한다. 자다가 얼굴에 봉변을 당한 아버지가 어이 하면서 돌아눕는다.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데 쥐가 혼비백산이다. 저야말로 놀라서 방향감각도 잃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방안을 헤집고 다닌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어느 구멍을 발견하여 나가면 천행이지만 동작 빠른 형한테 그대로 맞아 죽는 수도 있다.
이것도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그립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날이 풀리고 들판에 먹을 것이 생기는 철이 돌아오면 놈들은 정들었던 그 집을 떠난다. ‘기생충’ 생활을 마감하고 독자적으로 벌이에 나서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쥐들에게도 봄은 희망과 생동의 계절이다.
그들이 떠난 집은 적막하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표가 난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