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공장이다. 참말 오랜만이다. 여자가 많고 남자는 한 스무 명 남짓 되나. 남자들 중의 태반이 외국인이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우즈베키스탄... 내국인들은 참 무뚝뚝하다. 처음 본 내게 먼저 말 걸어 주는 건 죄다 외국인이다. 아는 단어 몇 개만으로도 그들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해준다.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8.03.22
공주 1 홍천 하고도 깊은 깡촌. 내가 있는 농장에 춘천 모 대학생 다섯이 들어왔다. 농촌체험 프로그램이라나 뭐라나. 남학생 셋에 여학생이 둘. 여학생 중 하나가 아주 심한 공주병환자였다. 마을에 들어오는 날 드레스 비스므리한 상아색 원피스에 이효리바지를 받쳐 입은 모양새가 참 가관.. 언니의 방 2008.02.20
회상 막내라 늦게까지 젖을 먹는 혜택을 누렸다. 말이 네 살이지 그때까지 젖이 나왔을까는 의문이다. 어쨌든 나는 네 살까지 엄마 젖을 물었고 빈 젖은 아니었건 걸로 기억이 된다. 네 살 때 젖을 떼기 위해 그게 뭔지는 모르나 모모 쓴 약초 액을 엄마 젖에 발랐다. 네 살이면 맹문이 빤하니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8
맴맴 인총이 없어 같이 놀 동무도 없었다. 또래 사내아이로는 승호라는 아이가 있었지만 골안에 사는 아이라 우리 집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이따금 근처 개울에 놀러오는 걸 몇 번 보는 정도였고, 동무가 될 형편이 안된 건 그 애는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가까운 데 아이들은 경애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5
나물 캐는 처녀들 길고 깊은 겨울이 끝나면 산골도 깨어난다. 여자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옆구리엔 종다래끼를 끼고 손엔 호미를 들었다. 아직은 잔설이 남은 해토머리 볕 좋은 묵정밭에 냉이가 돋았다. 들불을 놓아 새카맣던 논두렁에 모도록모도록 돋는 쑥은 얼마나 예쁜지. 쑥칼로 그걸 뜯어..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3
영암선 석포 역에서 여전히 70년대의 그 세월 속에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그 시절의 그 무엇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걸까. 경상도 땅이면서 강원도 태백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연민의 땅. 그래도 이곳에 가서 면소재지 삼거리에 서서 휘둘러보면 휘황찬란한 도시색채가 없어서 좋다. 그저 고독하고 음산해서 좋다.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8.02.12
만둣국이 있는 풍경 설을 지나고도 여자들은 맘 편히 쉬질 못했다. 설부터 한 달은 동네사람들이 집집마다 마실을 다녔다. 특정하게 어느 집을 정하고 가는 것도 아니고 차례로 순회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집이나 갔다. 혼자서 가는 경우는 없고 서넛이나 대여섯, 예닐곱이 같이들 다..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9
사랑방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랑(舍廊)은 안채와 따로 떨어져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방으로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렇지만 나 어릴 적 우리 사랑은 정말로 사랑을 나누는 방이었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었다. 이 건넌방을 사랑이라 했다. 아버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8
익명이 주는 충동 여행은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나도 낯설지만 그곳의 사람과 풍경들도 내가 낯설다. 나는 여행지에서 까닭 모를 욕망이 생긴다. 아주 멋진, 아주 멋지진 않아도 그런대로 매력적인 여자를 보면 하다못해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다. 평소엔 그러지 못하면서 영행지에서는 용기가 생긴다. 낯설음이 보..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8.02.04
동경 아무리 둘러봐야 산이다. 들도 없어 밭은 거개가 비탈밭이요, 논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한 되지기논들이다. 그리고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이다. 문명과는 너무 먼 오지였다. 아이들은 차 구경을 좋아했다. 이따금 저 아래 품안리 쪽에서 제무시(GMC)가 올라왔다. 탈탈거리는 낡..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