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익명이 주는 충동

설리숲 2008. 2. 4. 21:23

 

 여행은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나도 낯설지만 그곳의 사람과 풍경들도 내가 낯설다.

 나는 여행지에서 까닭 모를 욕망이 생긴다. 아주 멋진, 아주 멋지진 않아도 그런대로 매력적인 여자를 보면 하다못해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다. 평소엔 그러지 못하면서 영행지에서는 용기가 생긴다.

 낯설음이 보장해 주는 익명성 때문일 것이다.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점잖게 몸을 사려야 할 여건들이 그곳엔 없기 때문이다.

 익명성이란 참으로 편한 장치다. 얼굴 안 보이는 인터넷상에서 쌍욕을 해도 죄책감이 없는 게 익명성이다. 평소엔 근엄하고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아무데나 오줌 깔겨대고 쌍소리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익명성의 즐거움(?)이다.


 여행지에서 낯선 여자에게 껄떡대고픈 욕망이 생기는 건 그런 익명성에 다른 요인이 하나 더 있다.

 객수(客愁).

 낯선 곳에서의 나그네의 외로운 심사가 그런 충동을 부른다. 꼭 여자가 아니라도 그곳에서는 아무 하고도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왕이면 예쁘고 멋진 여자가 그 대상이 되길 바라고 있지만.

 그 욕망이 과다해서 성충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밀이 보장되는 편리한 은닉성이 나그네에게 대담함을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충동이 인다고 해서 사고(?)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카프카의 소설에서처럼 햇빛이 너무 밝고 강렬해서 살인을 했다는 거와 다르지 않다.  익명성이 보장돼 있다고 해서 충동대로 할 수는 없다. 그게 정상적인 인간이다.

 객수가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막가파식 막장인생이 아니라면.

 

 그러한 묘한 충동을 즐기기도 하고 그 충동을 자제하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방인  (0) 2008.03.22
영암선 석포 역에서  (0) 2008.02.12
화절령... 그 아침... 그 안개 속에서  (0) 2008.01.25
요즘 여자들이 너무 편하다구요?  (0) 2008.01.21
가을 국화차  (0) 2008.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