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장화리 노을

설리숲 2025. 3. 23. 21:41

 

 

 

 

 

예전에 바닷물이 허옇게 언 사진을 처음 보고는 얼척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짠 바닷물이 얼 수가 있는가?

이젠 자주 접하는 풍물이라 기이할 것도 없다. 워낙 추우면 소금물도 별수가 있겠는가.

 

 

강화도의 바닷가도 허옇게 얼었다.

하필이면 제일 추운 날인데다 일망무제 배래로부터 휘몰아오는 바람은 내 겉살을 무자비하게 할퀸다.

 

그래도 길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니 몸이 훈훈해져 견딜만했다.

강화나들길 7코스다.

 

 

 

겨울 갯벌과 바다는 무채색이다.

어떻게 보면 죽어 있는 세상 같다. 움직이는 생명체가 없다. 햇빛을 받아 반작거리는 윤슬이 있어 그나마 영이 도는 느낌이다.

 

 

 

 

나는 황량한 겨울 들판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렇게 매서운 바람이 부는 들판을 한 점이 되어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강화도는 섬이지만 곳곳에 이런 들판의 풍경이 많다. 내 인기척에 푸드덕대고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풍경도 좋다.

제가 무슨 고독한 겨울나그네가 된 듯이 청승 떨어보는 것도 유치하지만 괜찮다.

 

 

 

실은 이 섬으로 건너온 주목적은 장화리 해변의 노을을 보는 거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이후로 일몰조망지로 유명해진 해변이다.

강화도 서쪽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가로막고 있는데 이곳 장화리는 먼 바다까지 탁 트인 해변이라 온전한 바다 일몰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이윽고 해가 서쪽 바다로 가까워지면서 어김없이 카메라든언니오빠들도 모여들었다.

바람은 내내 사정없이 불어댔다. 카메라가 흔들려 초점을 잡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수평선에 구름이 두텁게 끼었다. 그러면 온전한 일몰은 없을 것이다.

카메라든 언니오빠들은 실망하면서 진즉에 포기하고 죄다 철수했다.

 

 

해변에는 다시 나만 남았다.

 

 

 

그들은 모른다. 해넘이보다 일몰 후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까짓 해 지는 게 뭐 대수로운 거라고 그것에만 집착할까.

 

해가 완전히 잠긴 후의 하늘이 세상 가장 황홀한 풍경이다.

시나브로 변하는 그 색의 조화.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세밀하고 은밀한 색채의 세계다.

 

이럴 때 내가 전문적으로 사진 찍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운 것이다.

 

 

된바람 몰아치는 해변에 홀로 남아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서서  자연의 경이를 경배하였다.

 

 

 

 

 

              전인권 :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