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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봉선사

전에는 무료였던 주차장이 얼마 전부터 유료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어두침침했다.날이 궂은데도 사람들이 많다.봉선사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시민공원이다. 경내가 넓고 절의 상징격인 연못이 있어 여름날의 가벼운 산책 장소로는 그만이다.연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했다.          봉선사는 대개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또 얽힌 추억 한 자락은 다 있을 것이다.우리의 소소한 추억들도 숱하지만 유명인들의 일화도 많다.  해방이 될 무렵 친일행각의 이광수는 근처 사릉에 숨어 살았다.당시 봉선사 주지는 운허 스님으로 이광수의 먼 친척이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운허의 주선으로 봉선사에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되었다. 유현상과 최윤희가 이곳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려 유명해지기도 했고조용필도 이곳에서 결..

정선 정암사

폭우가 내린 후 온 골짜기가 소란스럽다.물은 정암사 담장을 쓸어 버릴 기세로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장마가 잠깐 멈추고 햇살이다. 정암사.정선 살 적에 어쩌다 손님이 오면 구경시켜 주는 곳이 아우라지와 이곳 정암사였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로서 어쩌고저쩌고...수마노탑은 마노로 쌓아 올린 탑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으며 어쩌고저쩌고...이런 건 별로 재미없다. 그저 담장을 덮은 이끼라던가 경내의 고요한 적요감 따위가 나는 좋았었다.        오랜만에 찾은 정암사는 그러나,그간 많은 불사가 있어 예전의 호젓한 사찰이 아니었다.전각 당우도 몇 개 더 들어섰고 그 외 잡다한 시설물들이 들어차 답답했다.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내가 정암사를 자주 찾..

드디어 경회루에 오르다

열 번도 더 시도했던 것 같다.다들 어찌나 빠른지 소수에게만 허락하는 경회루 방문이 나한테는 요원해 보였다.여러 달의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예약 성공했다. 이게 그리 노력을 집중할 만큼 가성비가 좋은가 생각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번 들어가 볼 기회는 평생 없을 테니 소중한 기회이기는 하다. 예전 만원 짜리 지폐에도 들어 있던 경회루였는데 이젠 그 가치가 떨어졌는가 지금의 신권엔 대신 혼천의가 들어가 있다.     역사는 오래여도 지금 건물은 160여 년밖에 안 된다.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간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우리 경회루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 폭염의 오후에도 시원하기 그지없다.누워 오수를 즐기고 싶은 여유로운 공간이다.방문객에 주어진 시간은 40분 밖에 안된다..

엿보기 마을, 부여 규암

부여읍에서 백마강 건너로 보이는 마을이 엿보기마을, 즉 규암면이다.예전 규암나루를 랜드마크로 한 상업경제의 중심지였다.이웃 강경포구를 잇는 뱃길로 홍산장 은산장 군산 등지로 활발하게 물산이 이동했던 요충지라 경제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규암나루에는 자온대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이 바위가 무언가를 엿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이 마을 이름이 ‘엿보기마을’이 되었고 한자로는 규암(窺巖)면이 되었다고.자온대는 이 마을의 또다른 별칭이기도 하다.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던 그 역할과 명성은 이제 쇠락했지만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어 여행자에게 레트로 감성을 선사한다. 그 거리를 걷는다. 진종일 비가 내린다.          번성했던 옛 영광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모든 주도권은 강 건너 부..

추억팔이 감성팔이 돈의문박물관마을

문득 생각나서 우정 찾아가거나혹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레트로 감성의 장소들.유치하고 진부한 추억팔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잠깐 세월을 멈추고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경희궁 옆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내가 좋아하는 레트로시티다.왜냐면 내가 건너온 바로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전자오락실, 음악다방, DDD, 필름사진관, 만화방, 카세트테이프, 동시상영관 등 내 순수했던 청년시절의 감성들만 모아 세팅해 놓았다.             나는 DDD세대다.'당거리다동던화'는 최첨단 이기였다. 그전까지 공중전화는 시내용이어서 3분이면 자동으로 통화가 끊겼다. 살을 에는 겨울밤 골목 입구 쌀가게 문 옆에 있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오들오들 떨던 시절이 있었다.주머니 가득 준비한 동전을 넣어가며 ..

익산 아가페정원

이름도 낭만적인아가페정원. 익산에 있는 양로원,즉 ‘아가페정양원’입니다.1970년 고 서정수 신부가 개원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일반에게 개방되어 근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봄 여름 가을 모두 제철에 맞는 꽃과 나무가 주는 매력이 있어 여느 수목원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특히 메타세쿼이아길이 이곳 볼거리의 정점일 듯합니다.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조용히 호젓하게 거닐기 좋은 정원이네요. 이런 녹색의 장원이 유혹하는 계절,숲그늘에 앉아 시간죽이기.힘들게나마 내가 무더운 여름 한 철을 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이날은 자동차 온도센서가 43˚C까지 올라갔던 날.                                        ..

하이원 샤스타데이지

이맘때면 하얀 물결이 눈에 선합니다.그 하얀꽃 샤스타데이지를 만나러 정선 하이원엘 올랐습니다.몇 해 전에 평창 육백마지기의 하얀 평원에서 감동한 경험이 있던 터.       데이지 군락지로 가는 거리가 꽤 되어 보통은 저런 카트를 타고 갑니다.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그럴 겁니다.카트 이용료가 5만 원이에요. 제주 왕복비행기값보다 비쌉니다. 나는 걸어가기로 합니다. 명색이 걷기카페 회원인데 뭘 타고 간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그 돈으로 나중에 맛난 걸 사 먹는 게 이득이예요. 지하철을 탈 때 가끔 다리가 아플 때도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려는 똥고집이 있습니다.    걸어가는 길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각종 꽃들이 질펀합니다.이걸 외국 풍물처럼 멋지게 사진 찍고 싶었는데 영 그림이 안 나옵니다.      이..

푸르른 날, 금오산 약사암

국내에서 풍광이 좋기로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금오산 약사암이다.여길 가을에 가고 싶었는데 게으름 피우느라 여태 미루다 봄에 올랐다. 물론 가을만 좋은 건 아니다. 신록이 짙어지고 나뭇잎 무성한 이 계절의 산행도 좋다. 원래 등산은 좋아하지 않지만 오로지 약사암을 목적으로 오르기로 한다.    정보로는 금오산 오르는 게 만만치 않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내가 이제껏 올라본 산행 중 가장 가파르고 힘들었던 경험이 되었다.일반적인 들머리인 금오산호텔 코스로 들어선다. 입구 풍경이 아름답다. 여기는 아주 좋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내내 가파른 계단이다. 가파른 계단은 금오산 정상까지 계속된다.그래도 5월의 숲은 아름답다.      부처님오신날이다. 산길에 인파가 많다. 해운사에도 인파가 가득..

무주 구천동 어사길

더워요. 이젠 본격적으로 한여름입니다. 숲의 녹음도 검푸르게 짙어져 갑니다.여름은 역시 이 우거진 숲을 향한 동경이 커지는 철입니다.             무주 구천동계곡. 계곡을 끼고 백련사까지 들어가는 트레킹 길을 걷습니다.‘어사길’이라고 하네요. 방방곡곡 어딜 가나 무슨 무슨 이름 붙인 길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여긴 어느 소설에서 박문수가 지나갔다고 해서 지었나 본데 그런 거 별 의미는 없습니다.김호중이 걸으면 ‘김호중길’이 되기도 하니까.  어쨌든 ‘무주구천동’ 하면 예전부터 워낙 명성 높은 계곡이라 그 수려함은 말할 게 없습니다.우거진 숲에, 무엇보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의 절경입니다. 길은 시종 물길에서 한번도 멀어지지 않아 내내 물소리 청아하니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한동안 가물..

대전 상소동삼림욕장과 돌탑

숲이 좋다.더운 건 싫지만 깊고 으늑한 숲이 있어 그나마 여름을 견딘다.삽시간에 나뭇잎 우거지고 숲속은 짙은 고요다. 대전에 있는 상소동삼림욕장. 휴양림은 캠핑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삼림욕장은 단순히 하루 머물다 가는 곳이다.어느새 한여름 깊은 곳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웅숭한 숲그늘.물은 옥색이다.           휴양림 안에 이색적인 풍경.여기에 뜬금없이 이런 게 있는지 앙코르와트 같기도 하고 이슬람 건축물 흉내를 낸 것 같은 돌탑들. 이덕상 옹이 쌓았다는 안내문이 있다.이것 때문에 우정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곳의 명물이기도 하다.낮이 이울고 어스름이 내릴 때쯤이면 으스스 좀 무서울 것 같다.                                      이 말고도 숲 곳곳에 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