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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투어 서울] 절벽이 있는 풍경 창신동

북악산 인왕산 남산과 함께 한양 도성을 둘러싼 동쪽의 낙산. 낙산을 품고 있는 창신동이다.도성 밖에 있는 마을이라 불운했을까. 이곳은 왕궁과 가까운데도 오래도록 중앙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창신동엔 또다른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실은 돌과 절벽이 있는 풍경을 보려고 창신동을 갔다.부연 황사로 가시거리가 그리 좋지는 않은 따스한 날이었다.     대도시 서울 한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채석장이었다.여기서 돌을 떠다 한국은행 본점, 옛 서울역, 옛 서울시청, 지금은 철거된 총독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여전히 수탈의 잔재가 남은 우리들의 아픈 역사.   이 채석장의 전경은 건너편 언덕 위 카페 낙타>에서 잘 보인다.낙산의 옛 이름이 낙타산이다. 카페 이름도 특이하고 건물도..

문득 바다가 그리워서 포항 해파랑길

가끔이거나 혹은 자주,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고 먼 길을 떠나 정말로 바다에 간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그러나 막상 바닷가에 서서 한 30분만 있으면 그 성취감은 사라지고 만다. 욕구충만의 유통기한은 30분이다. 쾌락의 쳇바퀴가 된 바다는 금세 싫증이 난다.위압적인 동해바다는 늘 똑같은 모습이다. 나는 변화무쌍한 서해바다를 좋아한다.     동해를 갔다.역시 문득 바다가 보고 싶었다.한군데 서서 만끽하는 그 바다는 역시나 유통기한이 짧았다. 그렇다면 걷자. 어디가 될지 다리가 아파 쉬고 싶을 때까지 걸으면 될 일이다.해변길이든 들판이든, 비린내 나는 포구든.걷는 길은 지루함이 없다. 늘 새로운 것들이 다가오고 스쳐 지나가고 또 멀어지고.    제법 여러 날을 혹독한 한파가 이어지다 날이 완전히 풀렸다...

월정사 겨울 전나무길

일상이 무료하면 사람들은 문밖을 나가고 싶어 한다.생각은 있지만 보통 엄두를 못내고 그리워만 하다가 만다. 숲으로 가 봐. 일상의 답답함이 없어도 유혹하는 것이 숲이다.숲은 만병통치약이다. 순전히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실은 치료약이라기보다는 더불어 공존하고 상생하는 존재다.   눈이 온다기에 월정사로 갔다.지난번 보았던 내소사 전나무길 설경이 눈에 선해 월정사는 어떨까 궁금했다.그만큼의 폭설은 아니지만 겨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진 풍경이었다.호젓이 걷는 시간이 좋다. 푸른 전나무숲에 하얀 눈이  내렸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꼽는 월정사 전나무길.기분이 좋을 때도 울적할 때도 찾아가 걷고 싶은 이 로망. 두텁게 눈이 내렸다.고요하다. 나무들도 사람들도 모두 고요하다.여름에 지천이던..

대관령 국민의숲

한여름에도 서늘하게 냉기가 끼치는 고랭지의 이 숲은,늦은 봄에도 잔설이 남아 있는,1년의 반이 겨울이다. 좋아하는 우리나라 트레킹 길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이 숲길을 가장 좋아한다.여름과 가을엔 사람이 북적거리는 매력이 있고,요즘 같은 겨울엔 고독하고 적막한 풍경이어서 좋다. 다만 선자령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요즘도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린다.  맹렬한 한파에다 대관령에 오르니 사나운 칼바람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춥다.눈 쌓인 오솔길로 들어서니 바람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고요한 숲이 되었다. 그리고 숲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밖의 세상에서 무슨 지랄들을 해쌌든,고요의 숲은 그저 깊게 우거졌다.말없이 계절이 흘러간다.나도 그렇게 흘러가고 싶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 서늘하고 그늘진 숲..

늙어 가는가

전철에서. 빈자리는 없고 서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가방을 벗어 선반에 얹는데 바로 앞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나며 앉으시라고 한다. 내게 건넨 말인 줄 몰랐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어? 나? 움찔했다. 당황스러워 괜찮다고 앉으라고 어깨를 누르며 주저앉혔더니 다시 일어나며 앉으시라고 한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이제껏 자리를 양보만 하고 살아왔는데 양보를 받는 이 상황은! 거듭 양보하며 일어난 그녀의 친절을 또 거절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앉긴 했지만 솔직히 고맙지는 않았다.불편한 기분으로 앉아서는 오만가지 상념들이 들고 나갔다. 충격이다.이제껏 자리양보를 하고만 살아 왔는데아 이제 나도 양보받는 할아버지로 보인단 말인가.모자도 썼고 청바지도 입었고, 외모상으론 그럴..

새 많고 물 맑아 을숙도

을숙도는 다양한 생물들의 보고이자 아시아와 호주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국제적으로도 관심받는 곳이었다고 한다.그래서 일찌감치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 워낙 개념들이 희박해서였는지천연기념물로 지정은 해 놓고도 이후로 무자비하게 훼손을 자행해 왔다.인근 주민들의 무허가 경작, 분뇨산화지, 낙동강하구둑 건설, 준설토적치장, 분뇨처리장, 쓰레기매립장 등 훼손과 파괴의 무지한 행정이었다.뒤늦게라도 보존하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현재 을숙도 섬 안엔 건물과 인공조형물이 그득하다. 섬의 한가운데를 2번 국도가 가로질러 내달리고 있다.철새가 도래하지 못할 조건들이다.갈대와 억새가 광활한 이 섬은 철새가 도래할 수 없게 시민공원으로 조성했다.이런 악조건..

전등사 나부 이야기

도량으로 들어가는 산문은 일주문이 아닌 성문이다.전등사는 삼랑성 안 요새지역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격변과 부침의 강화도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우리는 동문과 남문으로 전등사를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기 싫은 길이 강화도 가는 길이다.대중교통으로 가든 자차로 가든 밀리는 차량에다 뭔 신호가 그리 많은지.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지루하고 긴 여정.그럴 때마다 다리 하나 더 놓으면 좋을 텐데 생각은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기존의 강화대교에 교통량 분담 목적의 초지대교를 놓았음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쨌든 다리를 건너 일단 섬으로 들어서면 일말의 짜증은 가라앉는다.   전등사를 간 것은 벌거벗은 여인이 궁금해서였다.대적광전 추녀 밑에 구부정하게 건물을 받치고 앉은 괴기한 형체.형벌을 받고 있는 듯한..

영암 구림마을

영암터미널 대합실. 창밖에는 내내 눈이 내리고 있었다.시골 버스의 운행시간은 들쭉날쭉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눈 때문에 운행을 안 할지도 모르겠다.구림마을까지는 약 25리로 걸어가자면 2시간 반이다. 평소 같으면 힁허니 내달려 가겠고만. 그러나 영하 5도로 날은 춥고 게다가 강풍까지 휘몰아치니 거센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영암읍에서 하룻밤 자기로 한다.     터미널 바깥으로 나오니 세상을 집어삼킬 듯 광란의 눈보라다.잘 여민 옷 틈새로 바람과 눈송이가 파고들었다.윙윙 전깃줄을 뒤흔드는 바람소리가 합세해  정신머리를 쏙 뺀다.      밤에 좀 누그러지는가 바람소리 잠잠하더니  아침에는 말끔히 눈이 그쳤다. 세상이 고요하다.파란 하늘에 햇빛이 쨍하다.  구림으로 가는 첫 차는 제시..

[골목투어 부산] 범일동 풍경

여명이 풀리면서 도시 빌딩 사이로 햇볕이 내려온다.언덕빼기 골목도 햇살과 함께 아침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에겐 숙명 같은,나그네에겐 웬수 같은 계단들을 오르내리며 매서운 겨울 아침 범일동 골목들을 헤집고 다닌다.     제주 서귀포의 이중섭거리에 이어 이곳 범일동 달동네에도 이중섭문화거리가 있다.범일동은 그의 생애 중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생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금수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이중섭에게 가난은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었다. 이곳 범일동에서 그는 가난과 일본에 있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겨운 생활을 했다.어떻게든 먹고 살아야겠기에 부두에 내려가 몸에 배지 않은 노동자로 전전했다. 그러면서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이중섭문화거리’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기실은..

음성 원남 호수

호수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강이 운다고 하셨습니다.맹동이 되면 인근 강에서 쩡 쩡, 가슴을 옥죄이게 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알지도 못하는 염라국에서 보내오는 심판의 소리 같은 울림이었습니다. 엄마는 강이 운다고 하셨습니다.       강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아니 강이 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원남호수에 이르자 잊은 지 오래인 그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호수의 울음소리.꾸렁꾸렁 어는 소리와 쩡 쩡 금이 가는 소리가 뒤엉켜 거대한 호안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어린 날의 그 작은 강의 울음소리는 공포스럽더니 이제 큰 호수가 우는 소리는 장엄한 느낌이었습니다.물이 깊으면 그 울림도 깊고 넓습니다.밤에는 무섭겠다는 생각을 합니다.그 장엄한 소리를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