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었네, 천둥이었네.
가슴 깊은 모랫벌을 쓸고 가는
가을밤의 폭풍이었네.
고목 사이 손을 뻗으면
새 한 마리
슬퍼도 울지 않는 둥지였네.
빗소리였네, 어둠이었네.
뱃머릴 흔드는
사나운 흐름이었네.
곤히 잠들었던 내 출항지
한 방울의 파문으로도
가라앉으려 하네.
바람은 없었네, 어둠은 없었네.
썰물과 밀물에 들고날
나의 길은 없었네.
성춘복 <폭풍의 노래>
신두리 해변을 몇 번 갔었으면서도 유명한 사구(沙丘)에 들어가 보진 않았는데 과연 ‘한국의 사하라’란 별칭이 붙을 만합니다.
물론 사하라에 비견한다는 게 얼토당토않은 과장이지만,
어느 특정한 부분만 확대해서 허언하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어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진리가 아닌 게 아니라는 해묵은 말을 새삼 떠올립니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 풀잎은 눕는데 순간포착의 기능만 하는 카메라는 바람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몸에 와 부딪치는 감각과 다른 사물들의 형상을 빌어서만 바람의 존재를 압니다.
겨울바람인지 봄바람인지 눈을 못 뜨게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모래바람이 쉴 새 없이 사구를 휩쓸고 인근 숲으로 달려갑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축축한 사장에도 모래들이 휘달려 어지럽습니다.
모래가 날려 쌓이는 언덕은 내일이면 또 지형이 바뀌어 있겠지요.
모래바람 속에 서 있으니 여기는 한국이 아닌 먼 이국 어느 곳에 서 있는 듯한 이그조틱 감성이 충만합니다.
모래 날리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현지 주민들의 생활은 아랑곳없이 어쩌다 한번 다녀가는 나 같은 나그네들에게는 멋진 여행지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이런 사구를 비롯한 다양한 지형과 지질이 산재한 우리나라가 좋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과, 갈 수 있는 다리,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
가장 소중한 나의 재산목록입니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집시가 됩니다.
엘튼 존 : Sixty Year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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