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3월에 눈 내리는 마을, 여주 루덴시아

설리숲 2025. 3. 24. 13:03

 

   샤갈의 마을에는 3(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우리는 대개 이국적인 풍경을 동경하고 선망한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이나 외암민속마을 등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유럽풍의 건물이나 마을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사대주의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 같은 것이겠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런 외국풍의 마을이나 테마파크가 참 많다.

 

 

이름만 듣고는 한번 가 봐야지 하다가 방문한 여주 루덴시아.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참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을 했다.

구석구석 어디 한군데 허술하게 방치한 곳 없이 디테일하고 세련된 감각의 손길이 미쳐 있다.

 

 

 

 

아름다운 루덴시아에는 연중 내내 많은 인파가 몰려들지만

꽃과 나무가 없는 겨울철엔 상대적으로 방문객이 적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멋진 광경은 눈 내린 정경이다.

 

 

 

3월에 눈이 내렸다.

아침 일찍 찾아간 루덴시아.

 

과연 사람이 없다.

세 시간 남짓 둘러보는 동안 본 사람은 매표소 직원 하나, 눈 치우는 직원 하나, 카페 직원 두 사람이 전부였다.

그 외에 입장객은 느지막이 들어온 네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엔 사람 하나 없어 유령의 도시나 혹은 동화나라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유럽풍의 테마에다 눈까지 내려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비주얼이지만

그것 말고도

갤러리 레코드 라디오 재봉틀 기차 등의 진귀하고 풍부한 유물에다 토이, 중세 유럽 속으로 이끌어주는 앤티크 공예품들, 또 곳곳에 서 있는 석상들을 망라한 종합박물관이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여름이면 온갖 기화요초 가득한 거대한 정원일 것이다.

 

전에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된 걸 본 적이 있는데 직접 가 보니 그 이상이었다.

 

 

 

조지 마이클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고 떠났다.

눈 내려 쌓이는 날이면 가슴 쿵쿵거리게 만드는 이 노래.

 

꽃향기와 훈풍의 계절,

3월의 마을에도 눈이 내렸고 여기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다.

그 안에서 또 그의 노래를 듣는다.

 

 

 

 

 

 

             Wham : Last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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