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초가지붕

설리숲 2016. 2. 29. 00:01

 

 가을에 벼를 타작하고 나면 아버지는 잇짚을 추려 좋은 것을 선별했다. 겨우내 새끼를 꼬아야 했고 가마니도 짜야 했다. 농경생활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집의 모든 것을 손수 만들고 고치는 만능 재주꾼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겨울이 오기 전에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로 지붕을 올려야 해서 아버지는 세심하고 까다롭게 짚을 골랐다.

 

 지붕갈이는 해마다 하지는 않는다. 이태거리로 하는 게 보통인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년시절은 고작 세 해건만 어쩐지 내 기억에는 해마다 한 것으로  박혀 있다.

 잘 추려 놓은 잇짚을 이엉 엮어 마름으로 집채 둘레로 세워 놓는 것으로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지붕갈이는 이웃 아저씨 몇을 불러서 하였다.

 

 오랫동안 비를 맞고 바람에 이아친 지붕은 낡아서 색깔도 거무튀튀하고 밟으면 쉬이 바스러졌다. 그 안에는 온갖 생명들이 깃들어 살았다. 새들이 기스락에 알을 낳기도 하고 뱀도 살았다. 흥부전에도 뱀이 새집으로 기어가 해코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렁이도 살았고 특히나 초가지붕은 굼벵이의 천국이었다. 묵은 이엉을 걷어내다 보면 수많은 굼벵이들이 지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묵은 짚을 걷어내고 새 이엉을 올려 얹는다. 마지막으로 용마름을 씌우고 고정 꼬챙이를 양쪽에 꽂으면 한 이태는 시름없이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 샛노란 이엉을 뒤집어쓴 집은 새로 지은 것처럼 훤하고 번듯했다.

 

 

 초가지붕엔 반드시 박을 올렸다. 초가지붕의 박과 박꽃은 물론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지만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듯 여유로운 낭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바가지는 생활필수품이었기에 반드시 박을 심어야 했고 농토가 부족한 가난한 농가들이라 박을 심을 만한 땅조차 궁하니 지붕에다 박넝쿨을 올렸다. 지붕뿐이랴. 울타리에 뺑 돌려가며 호박을 심고 강낭콩을 심었다. 이것들이 넌출을 이루고 올라가 울타리를 무성하게 덮었다. 농군들은 또한 논두렁에다 콩을 심었다. 그다지 비옥하지 않아도 잘 되는 작물들이 콩과 옥수수였다. 논두렁에다 콩을 심을 만큼 우리네들은 한 치 땅뙈기가 아쉬웠다.

 

 

         

 

 

 초가지붕은 단점도 많았지만 큰 장점이 하나 있어 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처마 기스락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컸으면 컸지 지붕에 듣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비 오는 날 대청이나 툇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지지랑물을 바라보는 것이 꽤나 운치가 있었다. 가끔은 비에 견디다 못해 지렁이 한 마리 떨어질 때도 있어 기겁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 울타리에 오르던 분홍색 메꽃은 더욱 그 색이 새뜻했고 울섶에는 목이버섯이 머슬머슬 돋아나서 그날 저녁 찬거리가 되곤 했다.

 

 팍팍한 애옥살이였어도 지금 돌아보면 비 오는 날의 그 정경은 참으로 운치 있고 그리운 그림이다. 초가가 아니고 기와나 함석집, 또는 슬레이트집이었다면 이만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여름밤 달빛을 받은 하얀 박꽃, 그리고 가을의 커다랗게 둥글어진 박. 우리의 가난한 초가에서만 있었던 정겨운 풍경일지니.

 

 

 

 이 노래, 초가집에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어야 이런 노랫말을 지을 수 있다.

명색은 동요라지만 아이들은 이 가사를 음미하지 못한다.

결국 동요는 어른들의 노래다. 그 시절을 살았던... 

 

윤석중 작사 권길상 작곡 : 둥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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