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맷돌

설리숲 2016. 7. 4. 22:34

 

 어머니가 애지중지 정성스레 아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맷돌이었다. 참말 맷돌이 없다면 우리 식생활은 영위되지 못했을 것이다. 메밀을 타고, 멥쌀을 타 떡을 만들었다. 도토리나 청포를 타 묵을 만들었다. 옥수수를 타 부족한 쌀 대신 구황 음식을 먹었다. 감자와 녹두를 타 전을 부쳤으며, 콩을 타서는 콩탕이나 콩국수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맷돌을 물에 씻으면 틀림없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니 우린 공연히 설레곤 했다.

 가끔은 맷돌이 닳아서 멀리서 매조이 아저씨를 불러 정으로 쪼는 것도 구경했다. 맷돌 타는 것 역시 힘이 드는 작업이여서 남자들이 해야 합리적인데도 역시 음식에 관한 일이라 여자 일로 치부되었다. 한 번도 남자가 맷돌을 타는 걸 보지 못하였다.

 

 연전에 TVN<삼시 세 끼>에서 맷돌 타는 장면을 보고는 혼자 키득댄 적이 있었다. 맷돌도 돌리는 방향이 있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방송의 출연자들은 하나 같이 그 반대로 돌리면서 안 된다고 난리를 쳐댄다. 그 힘든 걸 해온 옛 어른들이 참 대단하다고 존경까지 하면서. 출연자들도 그렇고 제작진 중에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지 끝까지 그 괴이한 정경으로 진행되었다.

 

 ‘맷돌로 간다고 하지 않고 탄다라고 한다. 이 정확한 표준말을 우리 시골에서는 일상으로 썼다. 농경사회니만큼 우리가 쓰는 많은 낱말들이 농사에서 나왔다. “찧고 까분다절구에 곡식을 넣고 빻는 걸 찧는다고 하고, 곡식 수확할 때 키에 담아 티를 날려버리는 작업, 즉 나비질을 까부른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나온 설인지 모르겠으나 맷돌 손잡이를 어처구니라 했다고 한다. 시골에 살면서도 한 번도 어처구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처구니가 아니라 맷손이다. 우리 어머니는 매테라고 했다. 어처구니는 국어사전에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잘못된 속설이 정설로 퍼져 나간듯하다. 짜장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맷돌을 다 타고 씻어 보관하는 것도 어머니 일이었다. 위짝 아래짝, 매암쇠 매숫쇠, 맷손까지 깨끗하게 닦아 맷돌은 툇마루 다리에 기대어 놓고 맷손은 부엌문 언저리 못에다 걸었다. 그 바람벽에는 맷손 말고도 똬리, 바구니나 종다리들이 걸려 있었다.

 

 맷돌은 계절에 관계없이 요긴했다. 마루에서 맷돌을 타면 그 울림이 마룻장까지 옮겨져서 모처럼 낮잠을 자려고 누웠던 아버지가 골을 내고 일어나 나가기도 했다. 마당에 눈이 펄펄 내리는 저녁나절에 콩탕을 해먹는다고 어머니는 마루에서 역시 맷돌을 탔다. 드르럭드르럭 맷돌 타는 소리와 어머니 쪽진머리 저쪽 너머 배경으로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이 지금도 암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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