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남소문이다.
풍수상 물이 빠져나가는 문이라 하여 사람들은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렀다.
저 광희문을 나가면 신당동이다.
사람이 죽으면 도성 안에 묻을 수 없으므로 성밖에 장사를 지냈다.
시신들은 대개 남쪽 수구문을 통해 성을 나갔다.
그래서 시구문(屍口門)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광희문 밖은 무덤과 망자의 세상이었고 그들을 위해 무당들이 모여들어 신당을 차리고 무꾸리를 하였다.
그래서 신당동(神堂洞)이 되었다.
해방을 지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앤다고 바꾼 게 新堂洞이었다.
이왕 바꿀 거면 참신하게 다른 이름으로 하든지 그대로 신당동이다.
광희문 밖은 사자들의 세계였다.
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천주교순교자현양관이다.
그 뒤쪽으로 조붓하고 어지러이 골목길이 얽혀 있는 ‘신당동 개미골목’이다.
골목 안에는 여전히 무꾸리집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입구에 떡 버티고 선 천주교순교자현양관은 이 밀교 같은 토속신앙을 외부에 알리기 싫어 막고 있는것 같은 모양새다.
아니면 반대로 그들을 보호하는 청지기 노릇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비가 내렸다.
덥고 지루한 여름 내내 숱하게 오더니 서늘해진 가을에도 비가 잦다.
가을비는 처량하고 쓸쓸하다.
골목은 너무나 비좁아 내 큰 우산을 쓰고 지나갈 수가 없다.
우산을 반은 접은 상태로 걷자니 바짓가랑이와 신발이 젖는다.
바람이 잠시 지나갈 때는 선득하게 몸이 춥다.
이 골목의 거주자는 대부분 노인들이다.
예전 어느 방송에서 이 마을 사람 하나가 인터뷰를 하는 걸 보았다.
여기가 왜 개미골목이냐고 물으니 마을 사람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심정은 이해하나 어불성설이다.
개미굴처럼 어지러이 이어진 골목인 것이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여서 좁은 골목 담장 밑에도 궁색하게 나마 화초들은 피어 있고 대문 안에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도 새어 나온다.
무꾸리집도 많지만 봉제공장도 많다.
공장이라지만 비좁은 방안에서 두엇 정도 일하는 가내수공업이다.
가을비 내리는 쓸쓸한 골목이어도 부지런히 돌아가는 미싱소리가 있어 조금은 사람 사는 훈기를 느낀다.
오랫동안 세월이 멈춰 있는 마을.
좁아 빠진 어둑한 골목길과
그보다도 더 좁아터진 집안.
척박한 삶이지만 그래도 죽은 삶은 아니다.
내일이 와도 별 희망은 없을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그래도 좋은 일이다.
골목 어디 구석에선지 담배 연기냄새가 풍겨온다.
새빨간 담뱃불이 타들어 간다는 건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은 왜 쓸쓸한지
가을에 내리는 비는 왜 또 처량한지 수없이 가을을 지냈으면서도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그저 견디지 못해 세상을 하직한 어느 누군가들을 생각하고
시퍼렇게 살아서는 하릴없이 남의 대문 앞에 어정거리는 나를 생각한다.
지금은 좋은 때, 램프에 불이 켜질 때
모든 것이 이토록 조용하고 평화로운 저녁
새의 깃털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것 같은 이 고요함
지금은 좋은 때, 가만가만히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바로 그런 때.
산들바람처럼 연기처럼
조용조용 천천히
신경림
골목을 나올 때쯤 되니 비가 좀 누꿈해진다.
바짓가랑이와 신발은 다 젖었지만 평온해진다.
그리고 유명한 신당동 떡볶이거리.
떡볶이인데 주인공 떡은 얼마 안 되고 라면과 쫄면 그리고 어묵으로 한 소댕 가득이다.
골뱅이무침에 골뱅이는 서너 마리에 풀데기만 수북하더라니.
배가 작은 내가 그 많은 걸 다 먹은 것으로 보아 그래도 맛은 있었나 보다.
과연 이 거리,
유명해질만 한 품격을 갖췄다.
레너드 코헨 : Famous Blue Rainc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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