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연일 빨갱이들의 폭동을 보도했다. 악몽의 나날들이었다. 북한방송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동향을 보도할 때는 동영상이 아닌 스틸사진을 내보냈다. 정지사진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KBS 역시 그랬다. 북한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들의 폭력적인 스틸사진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공포에 떨었고 전두환의 군대가 그 폭도들을 쓸어 버리길 바랬다.
악몽의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된 광주는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전두환 장군은 이미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여 그에 맞서는 자가 전무한 상태였다. 국민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화려한 휴가가 끝나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가장 비참한 역사를 보고 만다. 1980년 봄은 가장 비정한 봄이었다.
가장 찬란한 민주화운동이라 바로 잡은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보수집단들은 여전히 머리를 흔들며 빨갱이폭동이라고 침을 튀긴다. 그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비열한 작태가 진행되고 있다.
보훈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에서 설마 그럴까 하다가 과연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다.
한낱 민중가요 하나가 그토록 두려운가. 그게 두렵다고 한다면 그해 봄 광주를 도륙했던 전두환의 후계자이거나 그 떨거지임을 자인하는 것인가.
선남선녀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마당극이 있었다. <넋풀이-빛의 결혼식>이 그것이다. 5.18투쟁에서 비운에 간 윤상원 군과 그 먼저 야학으로 계몽운동을 하다 비운에 간 박기순 양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생전 못한 결혼식을 올려 주려는 프로그램이었다. 극중에 삽입된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백기완이 옥중에서 쓴 시 <묏비나리>를 토대로 황석영이 가사를 쓰고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당연 이 곡은 세상을 보지 못할 노래였고 지하에서 입과 입으로 퍼져 나갔다. 노태우 정권 때 해금이 되면서 민중들의 각종 행사에 주제가처럼 쓰여져 왔다. 5.18기념식에서도 공식적인 가요로 당당하게 연주하고 노래해오던 것을 이명박이 들어서면서 다시 운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아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자유를 안을까. 그 봄 여린 육신들은 아스팔트 위에 검붉은 피를 쏟아 내고 고귀한 자유를 쟁취하려 했건만 그 피로 살아 남은 자들은 그 희생을 부정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이 해괴한 현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 그 사건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다. 어른이 되어 어섯눈을 뜨게 된 후에도 그랬다. 그러므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자책하고 마음이 아팠다. 킬링필드에 버금가는 학살을 저지른 그 패거리들의 잔학상을 너무도 무심하게 흘려 버렸었다. 내 또래의 청춘들은 처참하게 쓰러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늘 죄인이 되어 마음이 옥죄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가치가 되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오늘 보훈처장의 행태에 분노하며 다시 불러보는 그 노래.
자유를 갈망하는 민중들이 이 노래를 목 터지게 부르고 부르는 그 세월동안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백기완 아니 그 한 발 띠기로 언 땅을 들어올리고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소리도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그 소리는 천상 천추에 맺힌 원한이여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가 꼬꾸라지고 그렇지 벗이여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이때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승리의 세계지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젊은 춤꾼이여
맨 첫발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 발 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또 한 발 띠기로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 엎어라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 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 몸만
맴돌라함이 아닐세 그려
이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 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시라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주검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 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질지니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다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협잡의 명수 정치꾼들은 죄 자네를 떠난다네
참나무 얼어 터지는 소리
쩡,쩡, 그대 등때기 가른 소리 있을지니
죽은 자에게도 다시 치는
주인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쭉소리라
차라리 그 소리 장단에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뿌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쭉을 나꿔채
그 힘으로 어영차 일어나야 한다네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왕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줄 아나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매와 같은 춤꾼이여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 목지 몸짓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 내야 한다네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 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 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딱 한 발 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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