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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크리스마스 날 산사를 가다. 예수한테 불경한 짓인가? 작금 기독교인들의 행태에는 저주하고 싶다. 성부와 성자를 욕보이고 성령을 훼손하는 게 오히려 그 신도들이니 저주는 예수께서 내리시리라. 영천 은해사와 대구 동화사를 가다. 먼저, 이름만 들었던 동화사. 수행 도량의 느낌은 별로 없고 그냥 ‘종교시설’ 느낌이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으레 생기는 경건한 불심이 들어오지 않는다. 유명세의 기대가 많이 사그라졌다. 기독교에 대한 혐오 비슷한 감정이 사찰에서도 일어난다. 어쨌든 날은 춥고 덕분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청정하고 높다. 단지 겨울풍경이 좋았다. 산문을 나와 멀지 않은 은해사로 간다.

보라섬

이런 섬이 있습니다. 보라섬. 글쎄 아름답다고 하긴 뭣하고 신기하고 이색적이긴 합니다. 섬으로만 구성된 전남 신안군. 그 중에서 박지도와 반월도입니다. 천 여개에 달하는 흔한 섬이라 그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던 이 두 섬이 최근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죄다 보라색을 칠해 놓아서 일명 보라섬이라 하고, 안좌도와 더불어 세 섬을 연결한 보라색 다리도 퍼플교라는 이름으로 지도에 등록이 돼 있습니다. 오로지 이 보라색에 이끌려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지붕도 보라요, 길도 보라 폐가도 보라 초록이 상징색인 농협도 뱃바닥도 화장실과 쓰레기통도 어부도 마을 촌로도 심지어는 밭의 멀칭 비닐도 보라색! 이쯤 되면 실소가 나옵니다. 야 이건 오버다. 여름이면 섬의 묵정밭엔 온통 보라색 허브인 라벤더로 가득..

교동도 대룡시장을 아시나요?

이 곳도 나름의 아픔이 있는 섬이다. 교동도는 강화도에 속하여 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부속섬이지만 원래는 황해도 연백군이었다고 한다. 6·25때 피난처로 일시 이주했던 연백 사람들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향의 애절함으로 살다 간 섬이다. 교동도는 지척의 강화도와 가까운 거리지만 해협의 기후가 열악해 두 지역은 모든 면에서 이질적이었고 오히려 연백과 같은 문화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피난을 온 듯한데.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은 연백의 거리를 본따 시장거리를 만들어 삶을 영위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대룡시장이다. 현 시장통의 건물은 죄다 그때의 건물이라 한다. 한때 제법 번성한 상업지역이었지만 실향민 1세대 어른들은 다 돌아가시고 인구도 현저히 줄어든 지금 시장을 운..

깡깡이마을 양다방

영도다리를 건너면 일명 ‘깡깡이마을’이다. 조선업의 활황으로 이 일대는 그에 관련된 기계제작과 수리, 철공소의 밀집지대다. 선박의 철판을 긁어내는 도구가 깡깡이다. 밤낮으로 철재를 다루는 소리가 깡깡거린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붙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유곽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조선 공장들이 있고 사내들이 있으니 유곽도 자연스레 생겨났을 것이다. 근래 깡깡이예술마을로 ‘예술’이란 단어를 첨가했지만 그닥 예술적이진 않아 보인다. 그저 단단하고 삭막한 철공소 골목이다. 뭐 깡깡거리고 만들어낸 작품이 예술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아는 사람이 부산에 가면 이곳을 한번 들러보라고 하여 우정 발길을 돌렸다. 마을보다는 그 분이 추천한 양다방을 가기 위해서였다. 주인 마담이 양 씨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1968년 ..

석모도 바람길

지난 가을 강화도행 교통의 열악함을 절감했던 터라 새벽 일찍 서둘렀다. 5시에 일어나 대충 낯만 씻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겨울에는 차 유리가 허옇게 얼어 녹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일쑤라 안날 저녁에 미리 종이박스로 앞유리를 덮어 놓아서 시동 걸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실은 차를 바꾸고 시운전 겸 자축의 의미로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질주하고 싶었던 여행이기도 하다. 새 차에 만족한다. 잘 샀군. 일찍 떠난 덕분에 막히지 않고 예상된 시각에 강화에 입도했다. 그리고 다시 석모도로 건너간다. 석모도 바람길을 걸을 요량이었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의 한 구간으로 석모도석착장이 그 시발점으로 되어 있다. 내비에 의지해 갔는데 내비가 엉뚱한 곳에 내려준다. 석모대교가 개통한 지 3년이라 그 전까지는 오로지 배편으..

황사영백서

국사시간에 듣긴 들었던 것 같다. ‘황사영백서’라는 말은 귀에 남아 있는데 그 단어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고 관심 또한 없었다. 지난 여름 끝에 간 추자도에서 잊혔던 황사영을 만났다. 추자도는 천주교박해 때 참수된 황사영 신부의 부인 마리아 정난주와 그 아들 황경한의 행적이 있는 가톨릭 성지중의 하나인 곳이다. 황사영백서는 1,800년 초에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고 박해한다고 황사영 신부가 중국의 주교에게 보내려 한 밀서다. 그 내용이 경천동지할 만하다. 조선을 청의 한 성(省)으로 복속시켜 중국이 관리해 줄 것과 서양의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여 천주교를 박해하지 못하도록 조정에 압력을 넣게 해달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세상에 이보다 더한 매국노가 있을까. 오로지 천주 하나님을..

직지사에서

얼마 전,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일구거나 장작을 패거나 소설 나부랭이를 끼적이거나 하다가 더러 숲의 소리에도 귀기울이며 자연에 묻혀 자연의 일부처럼 '홀로 사는 즐거움과 의미'를 구현하는 소설가(?) 아우와 만나 직지사 경내를 거닐었다. 그 절의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한다. 그 짧은 말에 들어있는 깊고 넓은 의미를 여기서 되새겨 볼 여유는 없다. 그 말이 승가의 가르침이라면 굳이 그런 산 속에 그런 우람한 모습으로 그런 엄청난 재력과 노동력을 들여 웅장한 건축물이 사찰로 들어앉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 절에 오르고 경내를 거닐고 다시 내려오면서 우리는 잔잔한 이야기들을 좀 나누었는데, "아우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는 척 보면 다 알 수 있지?" "그 정도는 알겠는데, 소..

박하사탕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근래 을 보았다. 윤도현의 동명의 곡을 듣다가 문득 생각난 거였다.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창동. 영화 참 잘 만드네. 주인공이 강 위의 철로에서 질주하는 기차에 부딪쳐 죽는 결말로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 평범한 소시민이 왜 처참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담담하지만 처절하게 그려나간다. 나 역시 같은 386세대인가. 어디 한군데 안주하지 못한 격변과 풍랑의 세대. 어쩌면 현 생존자들중 가장 불행한 세대의 우리들이 아닐까. 그리고 영화의 촬영지인 제천 애련리의 그곳에 가 보았다. 늦가을이라도 이미 풍경은 겨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듯한 삭막한 풍광.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라는 안내판만 있을 뿐 그냥 외진 시골이다. 관광객이 찾아들 만한 일말의 매력이 없다. 그래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