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880

제주 휴애리

제주도는 여름에 가면 여름만 있는데 겨울에 가면 사계절이 다 있는 독특한 여행지다. 그래서 그렇게들 몰려 가겠지. 나 사는 동네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광들을 즐기러. 신례리에 있으면서 이름이 왜 휴애리인지 모르지만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은 이런 제주의 사계가 모두 들어와 있다. 바람도 없고 포근한, 햇살 많이 쏟아지던 날. 코나 : 그녀의 아침

마라도 바다 끝

이건 정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인 장소다. 마라도는 여느 섬보다 특별히 풍광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국토의 최남단이자 ‘바다 끝’이라는 상징성으로 한번은 꼭 다녀오리라 벼르던 곳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바다 끝에 서서 먼 수평선 바라보고는 뒤를 돌아볼 여유를 갖는다. 더 이상은 앞으로 나갈 수 없어 왔던 길을 되밟아 나가는 막다른 길이었다. 길은 어디나 열려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겠다. 되돌아 걸으면서 자신 지나온 인생을 뒤돌아보라는 시간의 배려와 충고로 알면 그 또한 고맙고 뿌듯한 일이다. 이쯤이면 그럴 나이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단지 외지고 작은 섬이려니 짐작했더니 이렇게 번화가도 있다. 성당과 교회가 있고 사찰이 있다. 그 외에는 섬은 공간과 억새뿐이다. 그리고..

[도시투어] 판교테크노밸리

백수가 되었다. 괴산생활을 청산하고 충주로 옮겼다. 가까운 이웃 동네지만 환경은 천지 차이다. 깡시골에서 도심 한가운데로의 이동이다. 이렇게 또 한번 터닝포인트가 된다. 새로 개통한 중부내륙선 철도는 그간은 부발과 충주 구간만 운행했는데 12월 28일부터 노선을 연장해 충주에서 판교까지 운행이 시작되었다. 충주시민으로 등록이 되니 이 정보를 DM으로 보내 주었다. 그 첫 열차를 타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예매를 했다. 주말 아니면 엄두를 못 냈던 것을 이제 ‘백수’라는 직업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준다. 출근시간이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판교테크노밸리’다. 판교과학기술계곡? 굳이 영어로 이름 짓는 걸 비판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IT와 BT산업의 집산지다. 관련기업들은 물론 굴지의 대기업들이 ..

하얀 겨울

대관령 목장에서 눈이 부시다. 여름의 초록에도 눈이 부시더니 겨울 하얀 평원도 눈이 부시다 유난히 눈이 푸지게 내리는 이번 겨울. 새하얗고 포근한 계절. 보이는 풍경은 모두 저리 순결한데 우리 인간사도 맑고 청결했으면 좋겠다. 총선이 가까와졌다고 별 해괴한 짓들이 난무한다. 백성들은 고요하고 싶은데 저들끼리만 지랄들이다. 만년설인듯 겨우내 눈 덮인 강원도의 자연이 좋다. 싸돌아댕기기 좋은 계절이다. 세상의 모든 재밋거리는 문밖에 있다. 미스터 투 : 하얀 겨울

화이트 크리스마스 곡성 여행

곡성터미널에 내리니 포근하게 눈내려 쌓이고 사위는 뿌연 연무로 가득 찼다. 도림사로 가는 길은 벚나무가 늘어서 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이었다. 성탄일에 굳이 절을 찾아가는 게 못된 심보라 할 수는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공휴일이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템플스테이 등으로 사찰 방문객 수가 여느 때보다 많다는 통계를 방송뉴스에서 보았다. 불교방송에서도 이날은 크리스마스캐롤을 틀곤 한다. 종교를 떠나 즐겁고 거룩한 날이다. 동악산 기슭에 도림사는 포근하게 눈을 맞고 있었다. 나 말고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경내에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와락 훈기가 달려든다. 여기서도 내내 크리스마스캐럴이 흐른다. 대추차를 주문해 마신다. 산사에서 보는 설경이 고즈넉하고 평안해 보인다. 찻집 보살님(아가씨인..

완주 위봉산 태조암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노스님이 수행하며 공부하던 암자에서 일어난 일이다.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였다.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 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었지.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이십 년을 살았다는 노 공양주보살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무덤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네. 옳거니!..

제주 입도세 논란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제주도 입도세. 관광지이이다 보니 어딜 가든 쓰레기가 넘쳐나고 그 처리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항공료에 입도요금을 추가하자는 이야기다. 어불성설이다.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는 머린지. 쓰레기는 육지관광객이 싸가지고 가서 제주에 버리는 게 아니다. 다 현지에서 먹고 쓴 것이다. 현지에서 돈을 쓰는 것만큼 비례해서 쓰레기 양도 많다. 공평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 지자체에도 똑같이 도입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담을 쌓고 관문에서 돈을 받고 입도시킨다. 서울 사람이 부산까지 간다면 경기도 충청남도 대전 경상북도 경상남도 부산까지 7개 시도경을 넘을 때마다 돈을 내는 거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관광객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벌었으면 그 처리도 해당 ..

청주, 옛 도심을 걷다

청주 성안동 일대는 옛 청주의 도심이었고 지금도 중심번화가다. 북문 동문 남문 서문이 있다는 건 읍성이었다는 말이다. 서울의 사대문안과 같은데 청주의 옛 흔적은 거의 없다. 사대문 터만 남았고, 우리은행 신축공사 중 발굴된 우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은행 출입구 옆에 우물이 복원돼 있다. 일제가 통치하면서 옛 읍성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전설로만 남았다. 성안길과 소나무길, 옛 청주역과 중앙공원, 상당공원 등을 돌아보는 투어. 연일 매서운 한파.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날들인데,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뜬 분위기는 젊은이들을 거리로 불러낸다. 게다가 함박눈이 푸지게 쏟아져 내리니 날은 추워도 제법 마음이 달뜨기도 한다. 여전히 지난 여름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리에 눈이 내린다. 일말의 설..

커피가 사라지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이다. 꼭 뭐가 필요해서가 아니고 내게는 그냥 참새방앗간 같은 장소다. 마렵지도 않은 오줌도 싸고, 건물 뒤쪽 전망대에서 마을전경 구경도 하고. 무엇보다도 자판기 커피가 있어서 좋다. 비싸지 않으니 주머니에 몇 개씩 늘 남아 있기 마련인 동전들도 처리할 겸 달달한 믹스커피향도 나쁘지 않고. 근데 고속도로휴게소에 자판기가 죄다 사라지고 있다. 휴게소마다 파스쿠찌나 톰앤톰 등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두 셋 정도는 입점하고 있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 가껏 500원짜리 커피 10잔 팔아 봐야 돈도 안되고 4~5천원 하는 프랜차이즈커피 한잔 파는 게 수익이 좋을 테니까. 어느 휴게소는 아예 자판기가 없어졌고, 어느 휴게소는 있기는 한데 ‘고장수리중’이라고..

함안 아라가야 고분을 거닐다

롱롱 타임 어고우, 아라가야라는 부족국가가 번성을 구가했던 곳, 함안 여기저기 고대문헌에 등장은 하지만 그 내용이 다 달라 여전히 미지의 역사로 남아 있는 전설의 왕국.. 그렇지만 지금 우리 눈앞의 거대한 고분군은 갈데없이 확실한 역사적 사료다. 현재 육안으로 보이는 분묘는 37기인데 실제로는 200여 기에 달하며 전문가들의 추정은 1,000여 기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산 말고도 함안에만 고분군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바 과연 고대 아라국의 위세를 미루어 짐작하겠다. 봉분의 크기는 통치자의 권력에 비례한다. 비록 가야국들이 고대국가로의 발전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이토록 거대한 분묘라면 아라가야 권력자들의 힘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 왕들은 죽어 묻힌 지 오래고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