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완주 위봉산 태조암

설리숲 2023. 12. 29. 18:48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노스님이 수행하며 공부하던 암자에서 일어난 일이다.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였다.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 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었지.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이십 년을 살았다는 노 공양주보살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무덤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네.

 

옳거니! 돌무데기 속에는 도토리가 많겠구나.

묵을 쒀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먹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중얼거린 노공양주보살님이 돌무덤을 허물어뜨리고 보니 과연 그 속에는 한 가마는 좋이 되게 도토리가 가득했다.

그 한 가마나 되는 도토리를 몽땅 꺼내어 묵을 해 먹었던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놈의 다람쥐 두 마리가 공양주보살님의 흰 고무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뜯어먹다가 죽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너무도 추운 날이라 그날이 소한이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 내가 머물던 한 공동체마을에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상한 결혼, 하지 말아야 할 결혼식이 있었다.

그 결혼의 부당함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내 최소의 경고가 그곳을 나오는 것이었다.

내 배낭엔 정찬주의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책속의 길을 따라 이곳저곳 암자를 찾아 돌아다녔다.

후에 나는 그것을 만행이라고 포장하고 혼자 만족해하곤 했다. 실은 마음 둘 곳 없는 '배회'였는데.

 

 

날은 추운데 여러날을 그러고 다니다보니 그것도 심드렁해져 따듯한 방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호기 있게 떠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 배짱도 없어 여기저기 마른 산기스락을 배회하다가 또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찾아들었던 게 태조암이었다.

여러 날 이어지는 혹한으로 산내들은 온통 눈속에 묻혀 있었다. 책이 일러주는대로 조붓한 산길을 따라 걸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다보니 혹한인데도 몸은 더워 잔등에 땀이 났다.

목적지가 아닌데도 굳이 오르막길을 허위허위 올라간 것은 나를 혹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머릿속에 휘돌고 다니는 오만가지 상념들을 잊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봤자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을.

 

내 신앙을 위한답시고 다람쥐의 양식을 약탈한 공양주보살의 이기심에 대한 일화가 내내 머리속을 귀살스럽게 했다.

어디 저 공양주뿐이겠는가. 배려심 많고 고아해보이는 사람도 실은 내면 한쪽에는 그러한 이기심 정도는 다 있다는 사실을.

 

눈을 헤치고 마침내 도착한 암자는 아주 작고 초라한 건물이었다. 암자라기보다는 가난한 처사가 세속을 떠나 홀로 기거하는 오두막 같은 집이었다.

눈속에 파묻힌 암자는 너무도 적막했다. 굴뚝에서 실연기가 나오는 것으로 사람이 기거하고 있다는 알 수 있었다.

너무도 조용해 내 발소리 날까 사부작사부작 했지만 아마 안에 있는 사람은 낯선 인기척을 알았을 테다.

행여 문 열고 나와 차 한잔 하고 가라기라도 할까봐 얼른 돌아 나왔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추웠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다시 태조암을 찾아보았다.

그땐 몰랐는데 이번에 다시 태조암을 찾았더니 암자가 속한 산은 위봉산이었다.

눈 대신 두터운 낙엽이 깔려 있다.

그날 그길의 기억은 하나도없다.

 

 

이윽고 도착한 태조암.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게 건물이 번듯하다. 오두막이 아닌 번듯한 암자건물이다. 그간 셈평이 좀 풍족해졌나 보다.

 

 

 

 

 

 

 

 

아, 다람쥐였구나.

지금은 너도 깊은 동면에 들어가 있을라.

비축해 둔 도토리 너는 한 톨도 빼앗기지 않았기를.

 

 

 

 

고아할 것 같은 수행승려의 생활도 우리네들과 별반 들과 다를 건 없다.

 

 

 

 

 

 

 

 

 

역시나 암자는 두루적막이다.

이번에도 혹 발소리 날까 조심조심 사르디뎌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 나왔다.

 

 

 

 

산길을 내려오다가 모롱이에서 사람을 맞닥뜨렸다.

목도리와 방한모, 마스크로 완전무장한 여자였다. 태조암 사람이란 걸 직감했다. 아무리 불심 깊은 보살이라도 외진 길에서 사내를 맞닥뜨렸으니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을 테고 당연 놀랐을 것이다.

나는 얼른 합장을 해 보였다. 그러자 안심한 듯 저쪽도 합장으로 화답한다.

 

어디 왔다 가시는 거예요.?

암자에요...

거기 지금 아무도 없을 텐데요.

예 그냥요.

 

웃어 보이고 헤어져 내려왔다.

태조암은 늘 이렇게 적막한 곳인가 보다.

시시때때로 나도 고적한 암자에 푹 파묻혀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왔다 나가곤 한다.

 

 

 

 

 

태조암은 위봉산성 내에 있는 암자다.

암자로 들어가는 입구는 돌로 쌓은 산성이다.

 

 

BTS가 방문한 성지라는 안내팻말이 세워져 있다.

방탄소년단 따위가 대체 머시간디 그저 발자욱만 찍으면 명소가 되고 성지가 되는지 참.

 

 

 

금방이라도 희끗희끗 눈발 날릴 것같이 잿빛 하늘 낮게 내려앉은 겨울날이다.

참 쓸쓸하기도 하여라.

 

 

 

 

                         포레 : 꿈을 꾼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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