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그 여성

설리숲 2005. 4. 13. 19:09

 이곳은 깊은 산골짜기.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일년 중 한때는 제법 번화할 때가 있다.
 바로 요즘, 산나물철이다.

 우리 마당이 이른바 주차장이 되곤 하는데 나물꾼들이 끌고 온 차들은 평균 하루에 서너 대 정도 된다. 하루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리 골짜기를 다녀가는 셈이다.
 우리 집이 막바지에 있으므로 우리 마당이 주차장이자 휴게소며 베이스캠프가 된다. 여기서 간식도 먹고 음료수도 먹고 여기서부터 숲속으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된다.

 조용히 지내기를 원해 숲으로 들어온 나는 이때쯤이면 아주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 해에 왔던 분들이 다시 찾아와서는 잘 지냈느냐, 얼굴이 좋아졌다, 하고 인사를 건네 오는데 그런 인사나눔도 제법 반갑고 재미가 있다.
물론 나는 그 분들의 얼굴을 모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가므로 그 분들은 나를 알지만 아는 그 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한데 그 중에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얼굴이 있다.
 나물꾼은 대부분이 아주머니들이다. 그것도 오륙 십대의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많고 사십 대의 분들도 많다.
때로는 삼십 대의 젊은 여자들도 눈에 띄는데 작년 봄에 나는 그 중의 어느 여성과 무슨 일(?)이 있을 뻔했다.

 내가 방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있자면 아주머니들이 들여다보고는 말도 건네고 자연스레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때 위에서 말한 그 여성을 알게 됐다.
 물론 나는 결혼이니 연애니 하는 것에는 아예 담을 쌓은 몸이다. 그러니 그 여성이 아무리 예쁘고 상냥하다 해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그랬는데 같은 일행의 아주머니가 은근슬쩍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물론 그날은 그 여성이 오지 않은 날이어서 그 아주머니는 입에 침을 튀기며 그 여성을 칭찬하는 것인데 내 이야기는 들어볼 염도 안하고 일이 다 된 것처럼 그렇게 내려갔다. 그리고는 다음날인가 전화를 걸어와 또다시 귀찮게 하면서 계속 만나 보라는 채근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쪽의 의견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하긴 그 여성이 예쁘긴 하다. 이런 속물. 외모는 또 왜 따져!!
 아무리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나도 남잔지라 예쁜 여자를 보면 호기심이 가므로 그 여성의 얼굴은 그래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터였다.
 몇 번 더 전화를 해서 채근하던 그 아주머니는 끝내 나로부터 시원한 대답을 못 듣자 지쳤는지 그대로 끝이었다.

 그런데 가을 언제쯤에 달랑 두 사람이 골짜기로 올라왔다.
 말로는 버섯 따러 왔다고 하더먼 그것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별 다른 일은 없었고 그냥 커피 한잔 대접해 보냈다.

 올해도 바야흐로 나물철,
 연일 수많은 나물꾼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이런!
 왜 자꾸만 그 여성이 궁금한지 모르겠다. 작년 그 아주머니도 한번 왔다 갔는데 반갑게 인사는 나눴지만 그 여성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다.
 내가 먼저 물어 보기도 뭣해 그냥 말았지만 어째 서운하긴 하다.
 혼자 속으로 고소(苦笑)한다.
 - 잘난 척 하지만 너도 별 수 없는 사내놈이구나 흐흐!

 그건 그렇고 올봄엔 진짜로 안 올라오려나.
 어느덧 봄은 다 끝나 가는데,
 보면 한번 씩, 웃어 줄텐데.

 

 

           200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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