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강이 운다고 하셨습니다.
맹동이 되면 인근 강에서 쩡 쩡, 가슴을 옥죄이게 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염라국에서 보내오는 심판의 소리 같은 울림이었습니다.
엄마는 강이 운다고 하셨습니다.
강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아니 강이 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원남호수에 이르자 잊은 지 오래인 그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호수의 울음소리.
꾸렁꾸렁 어는 소리와 쩡 쩡 금이 가는 소리가 뒤엉켜 거대한 호안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어린 날의 그 작은 강의 울음소리는 공포스럽더니 이제 큰 호수가 우는 소리는 장엄한 느낌이었습니다.
물이 깊으면 그 울림도 깊고 넓습니다.
밤에는 무섭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장엄한 소리를 녹음해서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꽁꽁 언 겨울 호수의 풍경을 보러 거였지만 호수가 우는 소리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자연은 비주얼이 아닌, 소리로도 경이롭습니다.
음성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참 많습니다.
원남호수는 그 중에도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입니다.
그 둘레 한 바퀴가 6Km 정도 되는데 파란 수면을 보며 걷는 매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겨울 파란 수면은 죄다 얼었습니다. 지금 한창 어는 소리와 금가는 소리가 계곡 안에 울리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는 호수 인근은 너무나도 조용한 겨울입니다.
전국 어딜 가나 호수만 보이면 너도나도 나무데크 설치하는지라 그게 못마땅합니다.
이 원남호수는 그런 거 없이 자연적으로 난 길로만 다닐 줄 알았는데
에고, 여기도 한쪽 찻길 옆으로 이미 데크공사를 하고 있눈 중입니다.
올봄 벚꽃이 피기 전까지 완공할 거라 하네요.
봄에는 벚꽃 구경 오는 사람들 맞이해야 하니까.
호안가 언덕에 되똑 올라앉은 펜션 하나.
전혀 어울리지 않은 위치에 자리잡은 것도 생경하지만 웬 한옥풍의 기와지붕을 얹어 놓아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을에 오면 한번 저 집에서 하룻밤 지내 보고 싶습니다.
발코니에 앉아서 호수 위에 어린 가을산과 단풍이 제법 그럴듯할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에 자욱한 물안개도 그렇고.
이 근방에는 유일하게 하나 있는 펜션입니다.
황량하고 쓸쓸한 한겨울의 호수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입니다.
고즈넉하게 침잠한 고독 같은 것.
거기다 몇십 년 만에 듣는 호수의 울음소리. 그동안은 왜 잊고 있었을까.
집에서 멀지 않으니 가끔 이곳 호숫가에 서서 프랑스 배우 흉내 내며 청승도 떨어볼 일입니다.
또 식당이 하나 있고 이름이 예쁜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캠핑장이 하나 있고.
그리고 호수의 울음소리.
그 외에는 겨울의 적막뿐입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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