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7 ~2005/1/28
day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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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이번도보를 함께하게된 분이 있다. 40대 초반의 남성 , 강원도 산골에서 두문분출, 완벽한 아나로그적 삶을 지향하시는 작가분이신데 여름에 이어 이번 겨울,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검정 뿔테 안경 너머 모든 것을 시적으로 풀어낼 것 같은 순수하고 선한 눈동자를 가진 멋진 김작가.
약간의 동경심과 경외감을 필두로 난 완전히 반했다.
소박한 언사, 진중한 행동, 더불어 동남아 바디라인까지.
미처 나누지 못한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날 아침은 시작됐고 후에 벌어질 무서운 사건사고는
생각조차 못한채 무거운 걸음을 떼어냈다.
아침식사때까지만 해도 어제 말썽을 일으킨 무릎은 별다른 이상징후를 보이지 않았었기에 안심하고 걸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밤에 내린 잔설로 굽이굽이 산길은 하얗게 덮여있었고 날씨는 몹시 매서웠다.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한걸음을 떼어내는 순간, 나는 오늘 걸을수 없음을 직감했다. 상황을 지켜봐주고 알게 모르게 나를 걱정해준 동료의 배려로 급하게 달려온 이동차량에 올라탔다.
3일차, 어느정도 선두와 후미가 가려질 무렵이었고 무리수를 둔 걸음으로 지친 몸을 끌고갈 기력이 바닥난, 다른 두 동행인이 있었기에 그다지 쪽팔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무지 쪽팔렸다.
세 번째 참가, 보통의 실력은 갖고 있다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랬거나 말거나 조수석에 앉아 연신 손을 흔들어대며 한참 지난 최신가요를 흥얼거렸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을 점검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점심먹을 공간을 찾아보느라 정신없던 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와 첫걸음을 뗐던 작가분과 후미의 일행 넷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구불구불한 국도의 커브길을 땅만 보며 걷던 순진한 네명의 일행은 덤프트럭 운전사의 시각적 불출로 인해 스치듯 차에 치여 경미한 타박상 및 찰과상을 입은 것이었다. 나를 비롯, 차에 탔던 두명의 일행은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대상만 바뀌었을 뿐.
사고당사자를 걱정하고 온전한 나의 상태롤 안심하고 암튼 뭣같은 기분으로 여러차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듯 했지만 급작스런 사고의 발생 그로 인한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느닷없이 외계인을 만난듯한, 멍하고 어이없는 상태로 숙소에 도착했다.
3일만의 샤워와 세탁.그리고 편안한 마음.
닭볶음탕을 조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내려간 우리는, 3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해졌다.
그때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신 김작가분이 운영자분과 함께 들어오셨다. 쓸데없는 걱정을 끼쳤다며 멋쩍게 웃으신 후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은 몇박스의 자양강장제. 연신 미안하다시며 우리에게 건넨 한병의 음료는 나를 비롯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다. 점심도 못 드셨는지 몇 개 남은 주먹밥을 건네자 허겁지겁
드신다. 나는 다시 슬퍼졌다.
사람들이 도착하고 시끌벅적해진 숙소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사람들은 당사자의 증언을 한번씩 경청한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마음 같아선 30인분의 닭을 모조리 김작가에게 투여하고 싶었으나 다른 방법으로 고생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요리에 전념했다.
샴푸냄새를 풍기며 모처럼 말끔한 옷을 입고 저녁을 먹는 사람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 것이 엄마의 마음이구나하고 느꼈다~면 거짓말이고, 적게한 밥이 모자르다 투정하는 철없는 어른들에게 몰래 린치를 가하고도 싶었다.
뒷정리를 하고 마지막 설거지를 끝낸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기어올라갔다. 새로운 요가수업의 시작으로 열기에 가득한 모텔 602호. 그 틈에서 구부려지지않는 허리를 움직이고, 되지도 않는 자세를 취해가며 하루의 시름을 내려놓았다~면 역시 거짓말이고, 한 사람의 배려심이 왜 이렇게 여러사람을 슬프게 할까를 생각했다.
총거리: 0km
2005/1/19 임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