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구절리로 떠나다

설리숲 2005. 3. 21. 01:13

 조금 전 드라마시티를 보았다.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쁘고 잘 빠진 여자가 나오면 얘기가 틀려지지만......

 한데 조금 전의 그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그리 예쁘거나 잘 빠진 여자는 아니어도 진득하니 앉아서 끝까지 다 보았다.
 <구절리로 떠나다>
 단지 그 제목이 좋고 반가워서였다.
 구절리(九切里)는 나 있는 아우라지 역에서 한 정거장 더 들어가는 깊숙한 두메산골이다.

 "정선선의 마지막 종착역 구절리-"
 드라마는 꼬마열차에서 내리는 여주인공이 이렇게 내레이션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정선선 열차는 더이상 구절리로 가지 않는다.
 30여년간 숱한 애환을 싣고 구르던 구절리행 기차는 아우라지를 종착역으로 박아 놓고는 영원히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 9월 21일이었다.
 그날 나는 우정 구절리까지 걸어 들어가 그 마지막 열차를 탔었다. 말하자면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증산까지 가면서 사뭇 허무하고 애틋한 심정이었다.
 무슨 대상이든 마지막이라는 건 그렇듯 안타깝고 아쉬운 것.
 그런 게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영원한 것은 없다 하니......

 다들 곁에서 떠나려고만 한다.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떠나간 자리는 다른 것으로 메워지고, 남은 사람의 기억도 차츰 퇴색되다가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 게지. 우리들도 또 그렇게 늙어 사라지고 나면 남는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를 기억해 주지 않을 리라.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니 결국은 공(空)이요 시작도 끝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생활만이 가장 절실하니 무조건 거기에만 죽자사자 매달려 살아가는 게 가장 진솔한 삶인 것 같다.
 지나간 것은 애써 기억하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라.



      구절리

     기차도 이제는 추억이다
     폐광의 땅으로 스며드는
     도마뱀의 잘린 꼬리처럼,
     두 칸 짜리 혹은 한 칸 짜리의 저 막막한
     외로움을 붙들고
     단풍 속으로 투항하는,
     손만 들면 설 것 같은 속력으로 불어제끼는
     대금소리같은,
     가을 햇빛같은,
     눈물 찔끔 날 것 같은,
     그런 날의 구절리행 완행열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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