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도 오솔길에도 풀섶에도.
등성이에도 고갯마루에도 저 아래 잠들어 있는 사북의 천공에도.
안개 안개 안개...
세상은 온통 안개였다.
징조가 좋았다.
안개가 끼면 맑은 날이라는 게 맞는다면 그날의 새벽안개로 봐선 쾌청한 날이 되리라는.
이 지방엔 정확히 12일간 비가 내렸다. 지겨운 놈의 비. 그 여러 날을 한번도 해를 못봐서 여름에 새까매진 얼굴이 하얘질 정도였다.
그러더니 그날 화절령 고원지대에 그토록 짙은 안개가 뒤덮었다.
산 아래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싸늘한 바람에 때론 등골이 오싹하게 추웠다. 11월에야 느끼는 그런 계절감이었다.
안개에 다들 머리카락이 젖어 방금 욕실에서 나온 듯 상큼한 모습들.
그 모습들이 오랫동안 거기에 자연인으로 살아온 것 같이 싱싱해 보인다.
그리고 그 오전이 되자 정말로 파랗게 하늘이 열리며 따뜻한 햇빛이 누리에 쏟아졌다. 자외선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군.
우리가 하늘을 열고 왔을까. 그 이른 새벽에 안개를 헤치고 하늘길을 걸어 내려온 건 사실이니까. 그럼 우리가 햇빛을 지고 온 셈이 아닌가.
화절령...
아쉬운 건 너무 거리가 짧았다는 것.
기회를 만들어 좀더 먼 거리를 가봐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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