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갈대가 있는 풍경, 벌교 중도방죽

설리숲 2025. 12. 25. 00:18

 

벌교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무궁화열차는 예전에 특급보다 고급인 상류층 열차였는데 지금 시절엔 가장 천대받는 열차로 전락했다.

오래되어 낡은 열차는 여지없이 무궁화라는 간판으로 바꾸어 덜컹덜컹 다니다가 그마저 다하면 폐차되어 사라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냄새 때문에 속이 불편한 승객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 같아 화가 난다.

돈을 적게 낸다고 승객이 아닌 화물 취급하는 건 아닌가.

 

 

 

좌석번호도 그냥 매직으로 썼다.

이 정도면 무궁화열차와 또 그 승객들을 대하는 코레일의 개념을 짐작하겠다.

 

 

 

 

내가 벌교로 온 것은 드넓은 갈대들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맘때면 제법 볼만하겠다는 나름의 예측으로 떠나온 먼 여정이었다.

 

순천에서 벌교는 한 정거장이었기에 나는 악취 나는 객차에서 금방 탈출했다.

 

 

벌교는 그냥 꼬막이다.

꼬막 하면 그냥 벌교다.

 

여수에선 돈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선 얼굴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선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시쳇말이 있거니와 지금 그 주먹은 없고, 벌교에 내리면 그곳은 언제나 꼬막이다.

 

원래는 고막이 표준말이고 꼬막은 이곳 사투리였는데 소설 <태백산맥> 출간 이후로는 '꼬막'이 표준어가 되었다.

 

 

 

꼬막 비린내 나는 거리를 지나 중도방죽으로 나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중도(中島, 나카시마)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하여 제방을 쌓아 너른 간척지를 만들어 중도방죽이라 한다. 소설에도 나오듯 무고한 조선인들에 대한 착취와 폭력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이곳이 지금은 갈대 평원이다. 이번 내 여행의 목적지다.

 

 

갈대평원은 철교 저쪽 너머에 펼쳐져 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저 철교를 건너갔고 올 때도 저 철교로 건너왔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철교와 홍교 등 벌교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 펜이 훑지 않은 곳이 없다.

 

 

 

가까운 야산들은 아직 울긋불긋 가을풍경인데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은 영락없는 겨울바람이었다.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가게 몹시도 냉랭한 날이었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정신머리도 어수선했다.

일기예보를 믿고 옷차림을 단단하게 하고 온 건 참 다행이었다.

긴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 이튿날 영하 10도의 한파가 몰아쳤다.

 

 

 

카메라는 바람과 어지러이 일렁이는 갈대를 담지 못한다. 카메라는 순간만을 포착하기에 언제나 정적이다.

또한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담지 못하기에 사진 속의 풍경은 늘 평화롭다.

 

 

 

 

이미 꽃잎이 다 떨어져 빈 대만 남은 것들도 있었지만 내가 머릿속으로 기대했던 그 풍경이었다.

더 늦지 않고 제때 방문한 것 같다.

순천만의 갈대도 보았던 눈엔 이곳 중도방죽이 훨씬 광활해 보인다.

 

드넓은 갈대숲 가운데를 자연의 한 점 되어 걷는다는 건 참으로 폼나는 일이다.

이런 곳에서 얼마나 고독한가. 사람이 고독하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세차게 부는 바람에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해도 무섭거나 슬프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익명성은 얼마나 안락할지.

 

 

 

 

  장밋빛 꿈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젊음을 불사르던

  그 시절은 추억으로 남고

  난 이제 갈대와 함께 가을을 노래한다.

  삶을 말해주는 갈대의 몸짓엔

  모진 풍파에 꺾이지 않고

  하늘 뜻에 순리로 살아온

  사계절 한 생의 이야기

  담겨 있네.

  어느 때는

  정겨운 춤사위로 뭇 새들을 품어 안는

  푸름의 시절을 영위하고,

  어느 때는

  빈 둥지를 안고 갈바람과 함께 우는

  메마른 몸짓의 하소연,

  어쩌면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젊음의 날 그리워 한숨짓는

  은발의 내 삶이

  저 갈대를 닮았느니……

 

    박광호 <갈대를 닮은 나>

 

 

 

 

 

나를 키운 건 오 할이 태백산맥이었다.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와 국가와 사회는 줄기차게 친일과 친미, 반공교육을 주입했다.

 

<태백산맥>은 편협한 시각으로 눈귀가 멀고 피폐해질 수도 있었던 나를 정상인으로 잡아 주었다.

그로부터 나는 사물과 사상에게 소심하게라도 질문과 비판을 할 줄 아는 상식인으로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내가 그 풍경에 찬탄하는 갈대들은 저리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현상이기도 하다.

 

 

 

벌교천에 저녁나절 양광이 물들며 하루가 가고

늘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꿈꾸지만 갔던 길을 되짚어 이번에도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가 가고, 계절 하나가 가고,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전인권 : 사랑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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