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추억팔이 감성팔이 돈의문박물관마을

설리숲 2024. 7. 14. 21:17

 

문득 생각나서 우정 찾아가거나

혹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 레트로 감성의 장소들.

유치하고 진부한 추억팔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잠깐 세월을 멈추고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경희궁 옆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내가 좋아하는 레트로시티다.

왜냐면 내가 건너온 바로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전자오락실, 음악다방, DDD, 필름사진관, 만화방, 카세트테이프, 동시상영관 등 내 순수했던 청년시절의 감성들만 모아 세팅해 놓았다.

 

 

 

 

 

 

 

 

 

 

 

 

 

나는 DDD세대다.

'당거리다동던화'는 최첨단 이기였다. 그전까지 공중전화는 시내용이어서 3분이면 자동으로 통화가 끊겼다.

 

살을 에는 겨울밤 골목 입구 쌀가게 문 옆에 있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오들오들 떨던 시절이 있었다.

주머니 가득 준비한 동전을 넣어가며 나눴던 숱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밀어들.

동전이 더 이상 없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온몸이 꽁꽁 얼어 있곤 했다.

 

 

그의 집 앞에 가서 창문을 열어주오 세레나데를 부르던 시대도 오래전에 갔고,

밤새 절절한 연심으로 연애편지를 쓰던 세대는 우리보다 한참 연배였다.

DDD는우리의 청춘을 훑고 지나면서 한 시대문화의 조류를 이끌었다.

동전 대신 전화카드가 생기면서 조바심 내던 통화는 없어지고,

뒤이어 삐삐 시대가 왔지만 우리 시대의 것은 아니어서 그 물건에 얽힌 정감은 애틋하지 않다.

그리고 핸드폰에 이어

눈부신 문명은

스마트폰을 낳았다.

 

 

 

전화를 신청하면 1년 이상이 지나야 개통되던 시절이었다.

전화기도 계층의 급이 있어서 부잣집 거실에는 저렇게 금테가 둘러진 호화로운 전화기가 있곤 했다.

 

 

 

 

 

 

 

 

일요일이면 어울려서 설악산이니 낙산사니 카메라 들고 놀러 다니고는 24장짜리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이름을 적고 모월모일에 찾으러 오라고.

사진이 잘 나왔을까 기다리는 그 며칠이 길기도 했었다.

24장 말고 같은 값에 36장짜리 후지필름이 나오자 얼마나 좋았던지.

그나마 카메라는 좀 사는 집의 물건이었다.

관광지에서 파는 일회용 카메라가 각광을 받았었다.

 

이제는 모든 이가 쉽게 사진을 찍으니 그 한 장 한 장의 희소성과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쉽게 찍고 쉽게 지우고.

모든 것이 풍부해진 건 좋은 현상인가.

 

 

 

 

 

 

 

 

 

 

 

 

 

 

 

 

 

 

 

 

 

 

 

 

 

 

 

 

 

 

 

 

 

우리 제법 많이 걸어왔다.

기억은 엊그제인데 물리적인 시간은 한세대를 훌쩍 넘겼다.

나이 들어 기억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떨어져도 그 시절의 추억은 생생하니 참 불가사의한 인간의 뇌다.

 

 

돈의문은 정작 없는,

돈의문박물관마을 레트로감성 여행이다.

 

 

 

 

 

 

                  전영록 : 종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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