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엿보기 마을, 부여 규암

설리숲 2024. 7. 14. 21:37

 

부여읍에서 백마강 건너로 보이는 마을이 엿보기마을, 즉 규암면이다.

예전 규암나루를 랜드마크로 한 상업경제의 중심지였다.

이웃 강경포구를 잇는 뱃길로 홍산장 은산장 군산 등지로 활발하게 물산이 이동했던 요충지라 경제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규암나루에는 자온대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무언가를 엿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이 마을 이름이 엿보기마을이 되었고 한자로는 규암(窺巖)면이 되었다고.

자온대는 이 마을의 또다른 별칭이기도 하다.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던 그 역할과 명성은 이제 쇠락했지만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어 여행자에게 레트로 감성을 선사한다.

 

그 거리를 걷는다.

 

진종일 비가 내린다.

 

 

 

 

 

 

 

 

 

 

번성했던 옛 영광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모든 주도권은 강 건너 부여읍으로 넘어갔다.

쇠퇴일로의 마을을 재생하려는 문화사업이 몇 년 전에 시작되었다.

부여군이 진행하는 ‘123사비공예마을 사업과 민간사업자가 주도하는 자온길 프로젝트 두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공예마을을 키워드로 삼아 낡은 옛 창고 등을 리모델링하여 젊은 작가들을 위한 공에창작 공간을 마련해서 현재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현재 그 일환으로 곳곳에 건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세련되진 않지만 옛 감성이 물씬한 거리를,

채만식이 작품을 구상하며 산책했을 기분이 되어 쏘다닌다.

서울 명동거리를 걸을 때 옛 진고개신사가 된 듯한 감성에 빠진 것처럼.

 

비는 오락가락 하루 종일 내렸다.

 

 

 

 

 

 

 

 

 

예쁘고 세련된 카페들이 많다. 빗속에 그것들은 더욱더 새뜻하다.

이런 예쁜 비주얼의 카페들이 이 한갓진 시골거리에 있다는 게 기이하다.

어쩌면 하루가 다 가도록 손님 하나 들지 않을 것 같은 적요한 거리다. 비가 내려서일지도 모르지만.

 

이곳이 유명해지고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내게는 지금의 한적한 거리가 행운이다.

 

 

 

 

 

 

 

 

 

 

 

 

 

 

 

 

 

 

 

 

 

 

 

 

 

 

 

 

 

 

 

오래도록 걷다 보면 왔던 곳을 또 오게 되고 그럴 때 아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 눈에 띄기도 한다.

걷는다는 것의 정체요 속성이다.

 

이런 비 내리는 낯선 거리를 좋아한다.

눈에 익숙하지 않은 처음 보는 완전한 풍경들.

 

 

 

가는 날이 장날이러고 규암하나로마트가 개점한 날이었다.

할인 등 특별행사를 하느라 사람이 엄청 많다.

이 시골마을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음료수 하나 사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매장에도 바글바글.

계산대마다 카트에 너나없이 산더미처럼 물건을 담은 고객들이 10미터 이상 나라미를 섰다.  

음료수 하나 사 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기가 약소했다.

 

앞에 전시한 저 차는 아마도 경품인 것 같다.

 

 

 

 

마을 앞 금강은 벌건 흙탕물로 가득 찼다.

둔치까지 차오른 물에 나무들이 잠겼다.

도도한 강물은 경외감과 두려움을 준다.

 

 

 

 

 

 

강을 건너 신동엽 시인을 만난다.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하며 강렬하게 등장한 저항의 아이콘.

이곳 부여가 그의 고향이다.

시인의 시비와 생가, 문확관이 있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40세의 젊은 청춘인 채 세상을 떠나면서도 서둘고 싶지 않았을까.

선생보다 한참을 더 나이 먹은 나도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

 

 

장마는 언제 끝나려나.

 

 

 

 

The Cowsills : The Rain, The Park And The Other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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