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먹먹해져 밑바닥처럼
타락하고 싶은 날 우리
공항철도 타고 을왕리로 가자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낮달 바라보며
지금까지 끌고 온 길
밑줄 치며 삭제해 보자
파도소리보다 먼저 와 우리를
염탐하고 돌아가는 바람의
뒤통수에 힘껏 고함을 질러 보자
지난날의 패배 미래의 두려움
모두 저 푸른 바다에 수장시키자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절망의 날을 만날 때
공항철도 타고 을왕리로 가자
푸른 바다에 우리를 맘껏 버리고 오자
- 이권 <을왕리로 가자>
새가 왕성해서 을왕(乙旺)리라던가.
내가 이 섬에 와서 처음 만난 건 갈매기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드니 갈매기들도 먹을 게 많아서 해변으로 죄다 몰려드나 보다.
여기도 갈매기 저기도 갈매기.
을왕리 바다.
노을이 궁금했다.
흐리지 않은 날씨라 괜찮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다. 각박하지 않게 여유를 즐기는 풍토가 된 것 같다.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들러 저녁을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죽이는 행위는 축복받은 일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자.
아니다, 노력한다는 자체가 노동이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기.
어지간히 시간을 죽이니 이윽고 저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낮이 끝나고 밤으로 바뀌는 길지 않은 이 시간은 혼이 나갈 만큼 고요하다.
물리적으로 온갖 소음이 난무하지만 태양이 떨어지는 자연의 순간은 경건하고 황홀하다.
오늘의 해넘이노을은 그닥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황홀한 자연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초월한, 보다 높은 숭고한 경지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성령 같은 것일지도.
을왕 해변에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사람들은 이제부터 낮과는 다른 광란의 밤을 즐기려 할 것이다.
본 조비 :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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