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남원 약수암

설리숲 2024. 3. 26. 10:54

 

해탈교를 건너면 실상사다.

 

 

해탈.

인간들의 궁극의 목표다. 하지만 그곳에 도달한 자는 없다.

해탈이란 굴레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번뇌 근심 없는 평안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다. 부처가 된 그도 해탈에는 이르지 못했다.

 

번뇌와 근심 없는 해탈은 죽어서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탈은 열반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곧 죽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약수암은 실상사의 부속암자다.

암자를 가려면 실상사를 지난다. 우선은 저 해탈교를 건너야 한다. 죽음으로 가는 다리일까.

 

 

실상사는 전에도 여러 번 방문했고 앞으로도 여러 번 찾아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찰이라 우정 약수암을 찾아온 이번 길엔 그냥 지나간다.

 

 

 

 

약수암으로 가는 오솔길엔 노란 산수유 꽃이 한창이다.

암자 사립문 앞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지만 사찰 순례는 걷는 게 옳다.

그보다도 봄빛이 완연한 이런 날엔 조붓한 숲속 오솔길을 걷는 즐거움이 크다.

암자까지 시종 소나무 숲길이다. 제법 냉한 바람이 불어 으스스했지만 오르막길이라 몸은 후덥지근했다.

 

 

 

 

 

 

 

발끝을 보면서 걷다가 문득 예전에 본 어느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사람이 밟은 발자국 밑의 흙을 떠서 조사연구를 했더니 각종 생물과 미생물들로 득시글거리는데 그 수가 10만도 넘는다고 한다.

너무 많아 정확한 수를 헤아리지 못해 대충 10만이라 하니 기실 신발 하나 넓이의 땅이 그 정도면 이 지상과 우주는 실로 엄청난 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들이 고무신을 신는 것은 검소한 생활신조와, 가볍고 신고벗기 편리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유는 자비심이다.

걸을 때 되도록이면 사뿐히 밟아 흙속에 있을 생명들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측은지심이다.

 

 

 

 

한 시간이 여리게 암자에 도착했다.

사립문 앞에 댓가지로 엮은 평상이 있다. 긴 가을 겨울을 낙엽이 앉았다가는 바람에 쓸려 가고 다시 낙엽이 내려앉기를 거듭했을,

시간이란 추상의 개념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평상에 앉아 숨을 고른다. 뜨거운 한잔 커피가 구쁘다.

 

 

 

 

 

암자는 적막하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 갈참나무 잎들을 쓸고 갈 뿐 요사체에 사람이 있긴 할 텐데 오랜 세월 비워둔 것처럼 기척 하나 없다.

마당의 매화는 이제사 한두 송이씩 벙글기 시작했다. 훨씬 남쪽인데도 개화가 이리 늦는가.

 

 

 

 

 

 

약수암(藥水庵)’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지리산약수가 나와서 지은 이름이라 해서 실소했다. 너무 무성의한 작명 아닌가. 마치 예전 여자아기를 낳아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때 갓 낳은 아이라고 해서 김간난이 평생 이름이 된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름짓기 같다.

 

조선 경종 때 지은 암자라고 하는데 그 당시의 약수는 지금 흔적을 찾지 못하지만 이 석간수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모양새다.

약간 목이 출출했지만 돌확 위생상태를 보아 별로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보광전 뒤를 둘러친 송백 숲이 제법 멋들어졌다.

 

 

 

살생을 금한다는 절집에서 홈키파는 웬 거냐.

법당에 향을 피우는 애초의 목적이 벌레를 쫓으려는 거였다. 그것이 하나의 불교의식으로 자리잡았는데 하등 관계 없는 장례나 제례에도 도입되었다.

 

절집에서 발견한 홈키파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저걸로 많은 생명들을 살상했을까.

 

 

 

 

 

적막뿐인 마당가를 서성이다 노란 산수유 송이와 이제 피기 시작하는 매화를 들여다보다, 다시 보광전 층계참에 올라가 건너편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다가 사립문 밖으로 나왔다.

 

모든 길은 끝나지 않고 어디든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산길의 끝에 암자를 만나면 더 이상 길이 없다.

석간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잠시 쉬다 되돌아 나오곤 하는 것이다.

인간사에도 진격 일변도가 아닌, 뒷걸음이나 혹은 되돌아서 걸어가는 삶의 여유가 있기를 우리는 갈망하지만.

 

 

 

 

 

 

 

홀로 길을 걷는 일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강제로 지워준 굴레 같은 것 아닐까그 굴레를 벗어 버리는 게 해탈이라면 나는 해탈하고 싶지 않다.

 

봄이 발맘발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실상사 옆루리를 흐르는 람천.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흘러 경호강이 되었다가 남강으로 흘러 낙동강에 모여서는 큰 바다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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