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를 돌아본다는 건 그닥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의 전기는 대개 불행하고 우울한 삶의 점철이므로 그 삶이 내게도 전달되어 도통 일생이 허망과 피폐한 것으로만 느껴진다. 주로 예술가의 생애들이 그렇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또 이상 김유정. 또 고흐 뭉크.
반대로 풍요하고 발랄하게 산 사람들의 일대기는 드라마틱하지 않아 심심하고,
화가 이중섭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였다.
평남 평원 태생인 화가가 머나먼 남쪽 섬 제주까지 왔다면 그 역정의 불우함은 능히 짐작된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는 초가삼간에서 처자와 오순도순 가난하게 살았던 제주의 1년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귀포 이중섭거주지를 중심으로 그를 테마로 한 거리.
난 그림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 불행했던 생애 말고는 그에 대한 전부를 알지 못한다. 또 관심도 많지 않다.
그저 이국적 낯선 거리에서 로맨틱 베가본드인 양 도취하여 배회하는,
여느 관광객들과 똑같은 근천스런 존재일 뿐이다.
숙소가 바로 그 거리에 있어서 날마다 지나다니다 보니
처음엔 생경해서 좋았던 풍경들이 사나흘 쯤 지나니 시시껄렁해지고 조금은 시틋해지기도 했다.
날마다 밀려드는 관광객이나 먹을 것 풍성한 올레시장만 아니라면 참말 무료한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언덕을 내려가 거리의 끝에 다다르면 반짝이는 바다가 있었다.
그나마 이 바다가 다소 활력이 돼주었을까.
기껏 일주일 있었던 자가 꽤 오래 살았던 것처럼 권태로운 체를 하는 짓이 스스로도 재수없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중섭의 생애 중 이곳 서귀포에서 살았던 1년이 짧지만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비록 초가삼간에서의 가난한 날들이었지만 무시로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바다로 나가 갯내음과 파도, 햇볕을 즐기는 그런 날들이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가슴이 무지근해졌다.
행복이란, 돌아서서 가는 내 등을 오래 서서 바라봐 주는 눈길을 느낄 때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음을.
불우하게 살다 간 그의 생은 행복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가난했던 서귀포에서의 그 짧은 날들은 바다에 떨어져 빛나는 햇살보다 고귀한 불꽃이었을 것을.
그런 그를 나는 선망한다.
늘 그렇듯이 휴양지는 어둠이 내리면 더 휘황한 거리가 된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 <소의 말>
삶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고독과 허무다.
그리움을 초월한 쓸쓸함이다.
가을이 끝났다.
며칠 머무는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 내륙은 영하의 한파가 시작되었다.
이곳엔 눈이 내렸다.
가장 따뜻한 지방이면서 가장 먼저 겨울을 맞았다.
한라산 성판악 길엔 이른 아침부터 제설차들이 가을을 밀고 다녔다.
가을보다 쓸쓸한 계절이
시작되었다.
타니타 티카람 : Twist In My Sobr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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