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도시투어] 통영

설리숲 2023. 10. 6. 19:00

 

10월이 되자 귀신같이 기온이 떨어졌다.

계절 생각은 안 하고 습관대로 반팔차림으로 떠난 길이었다.

 

통영 거리에 내리니 시누적시누적 는개비까지 내리고 있어 오싹 한기가 끼쳤다.

가로수마다 잎을 떨구고 떨어진 잎들은 는개에 흠뻑 젖고 있었다.

바람막이라도 사서 입을까 하다 비의 양은 적고 한낮은 기온이 올라간다는 예보를 믿고 잠시만 추위를 견디기로 했다.

최남단 바다에도 이미 가을이 들어와 있었다.

 

 

여러 번 왔던 거리 통영. 길지는 않지만 한때는 주소를 두고 살았던 지방.

매번 같은 장소를 돌아다녔는데 이번엔 맘먹고 그동안 가지 않았던 골목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통제영 청마거리 윤이상거리 해저터널 미륵도골목.

 

같은 한국 땅이면서도 사뭇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다로 시작해서 바다로 완성하는 도시.

사대주의적 개념이어서 영 맘에 불편한,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가 어느 정도는 그럴듯하다.

 

 

 

 

 

 

 

 

 

 

 

 

삼도수군통제영

조선 후기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수군을 통솔하던 해상방어 총사령부다.

통영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흐렸던 하늘이 벗개면서 더 좋을 수 없게 청명한 날이 되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다는 푸르고 깊었다.

 

 

 

통영에 살 때, 동네였는데도 한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해저터널.

먼 길을 돌아와 이제서 궁금증을 해결하다.

뭐 그닥 볼만한  명물은 아니지만 '해저'라는 상징적인 명소니 한번은 가볼만하다.

서울의 잠수교를 연상케 한다.

 

 

 

 

 

 

 

 

 

 

 

 

 

 

 

 

 

피리 부는 것 같은 샛바람소리

   들으며

   바지락 파다가

   저무는 서천 바라보던

   판데목 갯벌

   아이들 다 돌아가고

   빈 도시락 달각거리는

   책보 허리에 매고

   뛰던 방천길

   세상은 진작부터

   외롭고 쓸쓸하였다.

 

           박경리 <판데목 갯벌>

 

 

 

세상은...

진작부터 쓸쓸하였다.

 

시가 아니라 팩트다. 그렇지, 세상은 진작부터 외로웠다.

쓸쓸하였다.

 

슬그머니 눈물이 마려웠다.

 

 

 

 

 

 

 

 

그동안은 몰랐던 이 도시의 특징을 이제사 하나 발견했다.

건물들이 대체로 흰색이다. 의도적인지 자연적인지 모르지만 햇빛 밝으면 도시 전체가 환하게 빛을 발한다.

나폴리의 명성을 얻기 위한 계획적인 도시미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통영에 반하다.

거리는 점점 가을빛이 짙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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