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호미곶 둘레길

설리숲 2023. 8. 8. 18:33

더위를 피한다고 피서인데.

피서 나들이 자체가 의미가 없다. 어디를 가든 문밖을 나서면 덥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피서다.

 

 

올여름,

내 생애 최악의 대홍수가 있더니

곧 이어 최악의 폭염이다.

극과 극의 기후가 갈마드는 시대다.

두렵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기후참상이 언제든지 공습할 것 같다.

 

 

장장 열흘의 여름휴가가 생겼다.

막연히 3 4일의 일정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동해 바닷길이다.

종착지는 정하지 않고 포항 호미곶을 출발하여 사흘을 걸을 요량이었다.

 

첫날 12km를 걷고 그만 종료해 버렸다.

 

작열하는 태양열, 뜨거운 바람.

그늘 없는 해파랑길.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일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이젠 젊은 축은 아니니 어쩌면 뉴스에 등장하는 노인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심약함.

 

 

 

천신만고 구룡포에 도착하여 대장정을 마쳤다.

반바지를 입었더니 새빨갛게 익어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그래도 어쨌든 길을 걷는다는 건 살아 있음의 증거다.

한 해 가장 열정적인 햇빛이 쏟아지는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건 참말 멋진 일이다.

태양은 강렬하고 바다는 넓고 푸르고,

나는 더 바랄 나위 없이 고독하고.

 

 

 

 

 

 

휴어기라 배래에도 포구에도 조업하는 고깃배가 없다.

길가 덕장 그물에는 고기 대신 콩단이 누워 있다.

혹서라지만 길 위에는 어느덧 가을이 가까이 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찰나다.

뒤돌아보니 이제껏 걸어온 내 인생도 순간이다. 짧은 순간 안에서의 굴곡과 부침이 결국은 부질없는 티끌 이상은 아닌 것을 알겠다.

그냥 앞에 보이는 남은 길을 걸어가면 그만이지. 그것도 고독하게.

 

 

 

 

 

 

 

 

 

 

 

 

 

 

 

 

 

 

 

 

 

 

 

 

 

 

 

 

 

 

구룡포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실댄다.

전에도 두어 번 왔었던 일본인가옥거리를 다시 걸어본다.

모두의 몸에서 후끈후끈 땀 냄새가 풍긴다.

정녕 여름이었다. 지독하게도 더운.

 

 

 

 

 

 

 

 생각해 보면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고 또 바깥세상으로도 나왔다 
 그 길은 때로 아름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길을 타고 사람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니 웬일일까.

 

                                          - 신경림

 

 

요즘 나오는 쏘카 광고에서 어눌하게 발음하는 탕 웨이의 대사다.

 

이대로 두고 떠나도 돼요?

   좋네요, 돌아올 필요 없어서.”

 

이 카피 맘에 든다.

 

언제나 꿈꾼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그런데 역시나 돌아오고 말았다.

죽어야 이룰 꿈인가.

 

 

 

 

                           김윤아 :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