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가 바덴바덴은 1,500원, 영스타는2,000원이었다.
들어가서 테이블을 잡고 앉으면 콜라 혹은 사이다가 한 잔씩 나왔다. 그거 한 잔 마시고 신나게 흔들어대곤 했다.
나중에 서울에서 콜라텍이라는 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미 지방에선 그 오래 전부터 흥행했던 거였다.
당시 춘천에선 명동의 바덴바덴과 영스타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요선동의 팽고팽고도 있었는데 팽고팽고는 인간들이 지저분하다고 우리는 덜 좋아했다.
음악적인 감각이 좀더 세련됐다며 젊은이들은 바덴바덴보다는 영스타를 더 선호했다. 그래서 500원이 비쌌나 보다.
바덴바덴이 이쯤 어디였는데 가뭇없다.
80년대 전반기 광풍처럼 휘몰아친 음악.
유로댄스.
모던 토킹을 필두로 시작된 거대한 물결은 고만고만한 스타일과 아류작으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한 곡이나 두 곡 정도 히트시켜 놓고 수많은 가수들이 명멸했다.
그 많은 고만고만한 가수들 중심에 조이(JOY)가 있었다.
그들 역시 반짝하고 사라지긴 했으나 많은 유로댄스 중에서 가장 빛나는 각광을 받았다. 조이를 모델 삼아 고만고만한 가수들이 봇물처럼 흘러 넘쳤다.
바덴바덴과 영스타에서 조이의 노래는 가장 톱이었다.
유로댄스는 거의 10여 년간 세상을 지배했다.
고만고만한 댄스가수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80년대 후반에는 씨씨 캣츠 (C.C Catch)와 런던보이(London Boys)가 양대 축으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그들을 끝으로 광풍같던 유로댄스가 막을 내리고 그 자리를 랩이 가미된 댄스곡과 그 이후론 비트가 더 강렬해진 테크노댄스곡이 나타났지만 아주 잠깐 관심만 받는데 그치고 말았다.
단순한 멜로디에 유치한 가사,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똑같은 리듬만으로 사람들을 열광시킨 유로댄스열풍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 기현상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전무후무한, 시쳇말로 레전드가 되었다.
레전드 유로팝과 함께 닭장문화를 향유했던 나는 참으로 행복한 과거 하나를 더 가진 셈이다.
그때 우리와 함께 일세를 풍미했던 수많은 유로댄스 가수들의 이름은 거의 다 잊어 먹었다. 그래도 혈기방장한 우리들을 더욱더 광란의 세계로 이끌었던 노래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시는 그 시절이 오지 않으리.
그 단순하고 무미건조한듯한 음악들을 가끔 들으며 젊은 날의 어느 곳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가장 혜택을 받은 세대였다.
서울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한 전두환 정권은 해방 후 처음으로 야간통행금지를 없앴고 외국여행자유화를 시작했다. 중고교의 교복을 없앴고 두발자유화도 시행했다.
젊은이들의 해방무드였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젊은 날의 그 몸이 아니다. 영스타 바덴바덴에서 여자애들과 부비부비하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노래와 함께 조명이 꺼질 때까지 뛰어놀고도 거뜬하게 상쾌한 아침을 맞곤 했었는데.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것.
지난 가을 낙엽을 떨구고 조락의 세월로 들었던 만물들도 이제 곧 푸르게 생동하는 걸 우린 알지만
사람의 세월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레전드 유로팝들은 영원히 남겠지만 청춘들을 열광시켰던 그 문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함께 젊음을 공유했던 우리 또래들의 화려한 과거 또한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한 단어로 그걸 '추억'이라 하겠지만 단순히 추억이라 하기엔 왠지 허무한 그 무엇이 있다.
오직 우리 세대만이 가졌던 아름다웠던 그것들.
이순원 소설 <은비령>은 2천 500만 년 후에 지금 내가 만나는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나 같은 삶을 영위한다고 한다. 사람은 죽어 다시 태어나는데 여러 번의 환생을 반복하다가 2천 500만 년 후에 지금 이 사람들을 고대로 만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 2천 500만 년을 주기로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
2천 500만 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가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강산을 바꾼다는 10년의 세월도 이와 같거늘.
혹 그때 우리 다시 영스타와 바덴바덴에 모여 유로댄스와 광란의 춤을 출까.
조이는 또다시 <터치 바이 터치>를 들려줄 텐가.
부비부비의 추억이여!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을만큼 시설이 좋다고 홍보하던 육림극장은 세월의 트랜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어느 날 사라졌다.
피비 케이츠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보다 안소영이나 오수비, 김부선 등 애마부인들의 농염한 몸을 더 사랑했던 혈기방장한 시절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이 많이 가던 식당이 삐삐스낵이었다.
매우 넓고 싸고 맛있고 메뉴도 다양한 일종의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세월이 이리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간판이 있다. 이 집이야말로 레전드다.
영화 < 라 붐> 중에서 : You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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