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을 아시나요?
난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이름만은 알고 있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성악가 출신인데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다는 정도만 안다.
조폭 출신에다가 병역기피 의혹, 불법도박 등 부정적인 뉴스를 연예기사에서 가끔 접하곤 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선입감이 있는 정도다.
그런데 꽤나 유명한 가수인 것 같다. 우리 누나들도 다 알고 지인 중에도 열성 팬이 있는 걸 이제사 알았다.
배구를 좋아해서 이따금 괴산에서는 가장 가까운 김천으로 배구경기관람을 가곤 한다. 김천은 여자배구 도로공사 홈이다.
이번에 배구경기장 근처에 다다라 문득 보라색으로 치장한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뭐지? 여행자 특유의 호기심이 일어서 시간도 넉넉한 김에 들어갔더니 김호중소리길이라는 테마골목이다. 온통 보라색이다.
김호중이 그리도 유명한 사람인가?
그의 팬클럽인 아리스가 김천시와 협의하여 이곳에 테마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다닌 김천예고로 통하는 길이다.
보라는 그들의 상징색이다.
지방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지방 도시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궁리를 하는 실정이다.
그중의 하나가 프랜차이즈 브랜드화다. 조그만 면소재지에도 무슨무슨 영화 혹은 드라마 촬영지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명소화하려는 눈물겨운 움직임들.
그러고 보면 전국 어디든 드라마 영화 촬영지 아닌 곳이 없다.
김천시도 그런 의미에서 김호중의 끈을 잡은 것 같다.
내 관점에서 보면 유치한 발상입니다. 한 시대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라야, 그것도 고인이 된 후에 기리는 게 상식인데 별 영향력도 없는 인물을, 더구나 생존해 있는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을 영웅화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양평에 세운 김종환노래비도 그렇고 이곳 김천의 김호중도 그렇고.
그러면 김호중보다 더 유명한 아이유가 살았던 자양동에 아이유기념관이 있어야 할 테고 대림동에도 소녀시대 윤아의 기념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경남 하동군에는 정동원길이 있다.
조금 이름이 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 크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테마길이라니! 그 발상이 가소롭기도 하고 한편 애처롭기도 하다.
지금은 잠깐 유명세를 탔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불투명한 그의 앞길일진대, 더 이상 뜨지 못하고 잊혀 버린 소년이 되면 ‘정동원길’은 뻘쭘해 어떡하려고.
내가 살았던 정선 여량은 원빈의 고향이다.
그 정도 톱스타이면 여량중학교를 위시한 그 일대는 원빈의 성지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천시, 또 하동군의 과도한 프랜차이즈화가 많이 민망하다.
보라색 골목길을 지나 연화지를 둘러본다.
연화지는 조선시대 동헌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동헌 앞에 있던 연못인데 동헌은 지금 없고 연화지만 남아 있다. 이 연못 둘레에도 김호중을 입혔다.
연화지의 정취가 제법 좋다.
세련되고 우아한 카페들과 음식점들도 자리잡고 있어 그런대로 시민들 공원으로는 제격이다. 다만 보라색은 제거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것 때문에 원래의 아름다운 풍경이 퇴색된 것 같아 불만스럽다.
골목 입구에 있는 테마가게.
옷과 가방, 액세서리 등 오로지 보라색의 물건을 직접 만들고 판매한다.
연화지를 한 바퀴 걸을 때도 몇몇 할머니들이 김호중 이름이 찍힌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걸 봤는데 여기서 샀을 테다.
아무튼 다른 계절은 모르지만 추운 한파 속의 보라색은 몹시 처연하고 더 춥게 느껴진다.
김호중 : 우산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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